던파 - 스턴건 제나
Added 2021-04-08 07:31:52 +0000 UTC"젠장!"
검은 코트의 밑자락과 함께 긴 은빛 생머리가 펄럭였다. 땀방울이 가슴골과 검은 속옷, 배와 옆구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짧은 와이셔츠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짧은 검은 치마를 타고, 가터벨트와 검은 니삭스를 타고 뚝 흘러내렸다. 그 떨어진 한 방울은 채 바닥에 떨어지기 전, 총알에 맞아 사라졌다.
여인은 눈을 부릅 떴다. 발치까지 탄환이 닿을 정도라면 이미 지척에 도달했단 증거. 여인은 호흡이 거칠게 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이 일을 받는 게 아니었어.'
여인은 짜증이 한가득 차올랐다. 분명 그녀는 천계인이었지만 황녀를 되찾겠단 의무는 없었다. 별로 좋은 기억도 없었을 뿐더러, 원체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청부로 입에 풀칠을 했고, 그녀의 악명은 카르텔 사이에 널리 떨쳐졌다.
잿빛 장미 루안나. 보랏빛 탄광이 터지는 특이한 권총으로 '보라 수리'라고도 불리웠다. 그녀의 권총은 수많은 일을 해결하게 해주었고, 그중 카르텔이 대부분이었다. 무려 서른에 가까운 간부가 그녀의 손에 절명했고, 더 많은 카르텔 병사가 죽었다.
수십의 모험가보다 그녀가 홀로 이룩한 업적이 더 굉장할 정도! 그래서 몇 모험가는 그녀를 질시하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카르텔을 몰아내는데 큰 공헌을 하는 사람을 깎아내려봐야 황군에게 손해일 뿐이었다.
"흡!"
루안나의 몸이 앞으로 굴렀다. 그 자리를 총탄이 흙을 튀기며 파고들었다.
'젠장.'
겐트 남문에 쏟아지는 대규모 병력. 루안나는 간부 사살이란 청부를 받았다. 언제나 그랬듯, 허술한 경계를 뚫고 가볍게 간부를 제압할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엔 그 규모가 달랐다. 아무리 허술했어도 수많은 병사 속을 파고들기란 어려웠고, 결국 발각되고 말았다.
사실 그녀의 전투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사격술은 기본, 단순한 무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당연히 발각당한 즉시, 병사 수십을 처리하고 달아났다. 흔적도 지워가며 빠르게 도주했지만 그들의 대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수많은 기계와 병사들. 그 어마어마한 물량공세에 루안나의 탄환은 바닥이 나버렸다. 간간히 발길질과 주먹질로 병사들을 상대했지만, 상대는 총을 든 놈들이다. 결국 지금처럼 도망치기 바쁜 상황에 놓여졌다.
후회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항상 표적을 쫓던 수리 같은 그녀가, 이렇게 꿩처럼 도망치는 꼴이라니! 루안나는 입술을 깨물며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타닥- 닥-
다급한 발소리. 루안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10초? 12초? 그렇게 세고 잠시 후, 그녀가 있는 곳을 소리가 바삐 지나갔다. 루안나는 숨을 참고 기다렸다. 소리가 멀어지고 한참이지나서야, 그녀는 숨을 뱉으며 주저앉았다.
"후……"
굳이 고갤 내밀어 확인할 필요 없었다. 주변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 누가 없는 건 확실했다. 일단 지금은 부족한 체력부터 보충해야 했으니, 눈을 잠깐 감으며 휴식을 취했다.
'혹시 스파이가 있는 건가?'
일이 허술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은밀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죽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았을까.
그것보다 그녀가 의심하는 이유는 자신을 똑바로 본 한 명의 병사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들통났고, 이렇게 쫓기게 된 것이다. 미리 안 게 아닌 이상 어떻게 그런단 말인가. 그것도 일개 병사가! 내부의 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루안나는 조심히 뒤를 살폈다. 소리가 나지 않은지 30분이 흘렀다. 추가 병력도, 보급 부대도 없었다. 그건 확실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복병은 언제나 존재했고, 변수는 항상 곁에 있었으니까.
사박-
풀 밟는 소리. 그것이 채 사라지기 전에 루안나는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섰다. 파스락대는 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이동! 루안나는 그렇게 나무로 올라가고 나서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분명 아무도 안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냐.'
이곳은 적진이나 다름없다. 분명 황도군과 멀리 있지 않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야말로 복병이나 다름없는 병력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위험한 건 본인의 목숨이었다!
'그들이 도달하지 않았고, 내가 무사히 돌아간다면 듬뿍 뜯을 순 있겠군.'
중요한 정보에 위험 부담이 큰 임무에 몰아세운 값은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었다. 혹시나 늦어서 황군이 큰 피해를 받았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돈만 받으면 됐으니까!
루안나는 1시간 째가 되고나서야 확신을 하고 바닥에 내려앉았다. 작은 새가 내려앉은 것처럼 흙먼지가 작게 피어오를 뿐, 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루안나는 땅에 서자마자 몸을 돌렸다. 병력이 간 곳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다면……!
파직!
그러나 그 생각은 생각으로 그쳤다. 몸을 돌리자마자 바닥에서부터 푸른 번개가 솟구쳤다. 그건 피할 새도 주지 않고 루안나에게 꽂혀들어갔다. 모든 신경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전기! 그것에 저항할 순 없었다.
루안나는 바들거리다 주저앉아버렸다. 그러자 곳곳에 숨어있던 카르텔 병사들이 나타났다. 그 장면은 루안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분명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것보단 여기에 숨어있는 걸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병사들의 히죽거리는 미소를 본 루안나는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고작 해야 손가락을 까딱이는 정도…… 입을 바르르 떨던 그녀가 간신히 말을 했다.
"대체…… 어떻게……"
당황하는 그녀를 보며 병사 하나가 코트 밑을 들추며 말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크, 이년 봐요. 물이 아주 제대로 올랐는데요?"
"크, 들은 그대로인 걸."
들은 그대로? 병사들이 하나둘 다가와 한 마디씩 던지는 건 아주 충격적이었다.
"아주 중요한 놈인데. 이렇게 팔아넘겨도 되는 건가."
"그러게. 모험가들이라고 다 친한 건 아닌가봐."
"그놈도 똑같은 사람이란 거지. 끌끌, 근데 진짜 정확한데? 이 정도면 애인이 판 거 아닌가."
"어? 그럼 이제 우린 그놈과 구멍 동서가 된단 말이잖아."
"으, 그건 싫은 걸."
루안나는 비단 전기 충격 때문에 머리가 멍한 게 아니었다. 이들의 대화는 충분히 그녀를 멍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팔다니? 대체 누가? 아니, 대충 누군진 알 수 있었다. 같은 모험가라고 했으니 그녀를 질시했던 모험가들 중 하나가 그런 게 분명 했다. 바로 그 점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아군을 팔아넘겼던 경우는 많았지만 설마 자신이 그 중 하나가 될 줄이야! 루안나는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여기서 도망쳤을 때의 이야기지만……
병사들은 루안나를 바로 눕혔다. 그리곤 한 명씩 사지를 내리눌렀다.
"크, 이년 입이 제법……"
병사 하나가 루안나의 도톰한 입술을 만졌다. 그 욕망 가득한 눈빛과 손짓에 루안나는 고개를 팩 꺾었다.
"허, 이년 봐라."
그의 코웃음에 루안나는 속으로 더 크게 웃었다. 온갖 대처에 대해 배웠다. 그 중 하나가 포로로 잡혔을 때의 처우였다. 지금처럼 앙탈을 부리며 최대한 발악한다. 물론 중간중간 못이기는 척 약한 모습도 보여주면 별 문제 없이 탈출할……
어?
루안나는 코앞에 내밀어진 음경을 보며 눈이 흐려졌다. 순간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쳤다. 병사는 큭큭 웃으며 좋아라 하며 그녀의 얼굴을 꽉 잡았다. 그리곤 입술을 비집고 음경을 밀어넣었다.
꽉!
"아악!"
병사는 비명을 질렀다. 루안나가 성기를 끊어버릴 기세로 물어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끊어지거나 하지 않았지만, 그 아픔은…… 주변의 병사들이 순간 사타구니를 감싸쥐었다. 물론 당사자는 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지만……
"이 씨발년이!"
병사가 이를 악물고 루안나의 뺨을 때렸다. 고개가 팩 꺾인 루안나는 순간 화가 솟구쳤다. 지저분한 걸 디민 주제에 손찌검까지? 하지만 지금 그녀는 제압당한 상태. 거기다 탈출해도 무사히 달아날 수 있을지 몰랐다.
참아야하나. 루안나는 이를 꽉 물고 머리를 숙였다. 병사의 손이 사정없이 휘둘러졌지만, 루안나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무방비하게 얻어맞았다.
"야, 야 그만해라."
"씨발 그만두게 생겼어? 이 씨발련이 내껄 물었다고!"
"정 뭣하면 약 처먹이면 되고, 아니면 밑에라도 쓰면 되지 인마. 빨리 그거나 치워! 눈썩는다!"
"하이 씨발년 진짜."
병사는 루안나의 얼굴에 침을 칵 뱉었다. 붉게 부은 뺨에 더러운 침이 붙었다가 흘러내렸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저 이가 자신의 것을 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루안나는 옆을 보았다. 주변에 있는 건 남자들 뿐. 심지어 그들 중 누구도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다. 이대로면 무차별적인 겁탈을 당할 게 분명 했다. 반항해봐야 방금처럼 폭력만 벌어지겠지. 루안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 모습에 병사들이 그녀의 하의를 벗겨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성욕을 풀 부분이지, 다른 부분이 아니었다. 애무할 시간도, 감상할 시간도 없었다.
"캬하. 털난 거 봐."
"지금 그게 문제냐? 여기 봐. 거시기가 아주 전에 본 창부보다 더 좋은데?"
"물은?"
"아씨, 그냥 넣으면 아픈데-"
루안나의 하반신을 발가벗긴 그들은, 활짝 벌려진 그곳을 보며 저마다 투덜거렸다. 결국 한 명이 나서서 애무를 하기 시작했고, 루안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녀의 음부는 차츰 젖어들어갔다. 그녀의 음부를 매만지던 병사는 자신의 손가락에 침을 듬뿍 묻혔다. 그리곤 허벅지를 꽉 잡으며 검지와 중지를 붙이고 삽입했다.
쩌걱-
끈덕진 소리가 들렸다. 마치 수프가 끓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들은 바쁘게 음부를 들쑤시는 손가락과 그것들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침을 꿀꺽 삼키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잔뜩 성이난 바지 앞섭을 잡으며 진정시켰다.
그야말로 먹음직하게 요리되는 루안나의 음부는 애액의 분비로 번들거렸다.
"흣…… 흑……"
조금의 배려도 없는 성난 애무. 그러나 루안나는 자신이 당하고 있단 사실을 인정하기도, 표현하기도 싫었다. 그저 숨을 죽이며 소리를 참을 뿐이었다.
척척- 뽑혀진 손가락을 따라 나오는 애액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병사는 질척해진 손을 털면서 바지를 주섬주섬 벗기 시작했다.
"아, 왜 너 먼저 하냐!"
"이게 위아래도 없네!"
"그래도 제가 이렇게 만들었는데 먼저 하면 어디가 덧납니까?"
병사의 투정에 나머지도 그냥저냥 넘어가기로 했다. 루안나는 고갤 들었다. 이런 하급 병사들에게 범해져야 하다니. 병사는 바지를 풀기 급하게 삽입했다. 그리곤 몇 번 허리를 놀리지 못하고 그대로 안에 싸버렸다.
모두의 야유 속에서 그는 자리를 비켰다. 혹시 이것 때문에 양보라도 한 건가. 루안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어서 몇 명의 병사가 더 섹스를 해왔지만, 루안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요년 봐라."
그걸 사지를 누르고 있는 병사 중 한 명이 보았다. 감흥이 없다는 그 모습에 오기가 생긴 것이다.
"야, 어차피 감질나는데 한 번에 가자, 한 번에."
그 말의 뜻을 모두가 이해한 건지, 루안나와 섹스를 하던 병사가 고갤 끄덕였다. 그러자 사지를 붙잡은 병사들이 손을 놓았다. 루안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참았다. 만일 인질로 잡더라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조금 더…… 조금 더 견뎌야 했다.
병사는 루안나의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고 그대로 안아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 다른 병사가 히죽 웃으며 항문을 꾹꾹 눌렀다.
"읏……?!"
루안나는 조금 놀랐다. 간혹 이런 쪽의 성향이 있는 사람이 있다던데…… 설마 했지만 있을 줄이야. 항문에서부터 불쾌한 감각이 올라왔다. 앞쪽은 차라리 비벼지면서 느껴지는 게 있지, 이 부분은 뭔가……
'이상해!'
루안나가 이를 까득 물었다. 표정도 분을 삭히느라 어떻게 자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짜증이 가득 담긴 얼굴일 수밖에 없었다. 두 남자가 헉헉거리며 들쑤시는 동안, 루안나는 이제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그렇게 열이 넘는 병사가 그녀를 거쳐갔다. 루안나의 체력은 보통 병사는 우스울 정도로 강했다. 고작 이런 정도야……
'어-'
그때 그늘이 졌다. 다른 병사보다 컸다. 근데 그 덩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미 두 남정네에게 안겨있는데도 고갤 꺾어야 되는 그 크기란……!
"크흐흐- 이년은 좀 질긴가보네?"
쿵쿵거리며 다가온 이 덩치의 남자는 루안나를 잡아들었다. 그리곤 다른 병사와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의 음경을 겨누었다.
"자, 잠깐……"
루안나는 이제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간혹 신음 정도만 낼 뿐이었다. 헌데 지금은…… 당황했다.
"찢어져, 안돼. 그만둬!"
루안나의 말에도 덩치는 히죽 웃을 뿐이었다. 그리곤 무자비하게 음경을 쑤셔박았다.
"흣!?"
루안나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의자에 묶여져있었다. 그녀는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갔다. 분명 덩치의 남자를 상대한 것까진 기억났다. 그 뒤로 수많은 병사를 상대했고, 서서히 지쳐가던 중 누군가가 목에 전기충격을 가했던 것까지도……
루안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목을 꺾었다. 뻐근한 목을 주무르고 싶었지만, 사지가 자유롭지 못했다.
"하아……"
루안나가 이를 까득 물며 힘을 주었다. 몇 번 들썩임 끝에 그녀는 포기했다. 질긴 가죽끈은 웬만한 장한도 힘주어 끊기가 어렵다. 그럴진데 이렇게 힘을 낼 수 없는 자세에선 무력할 뿐이었다. 차라리 포기하고 자신을 붙든 자들에게 협력하는게 나았다.
무슨 이유에서든, 자신을 살려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황군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함일 것이고. 루안나가 아는 건 적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 같이 굵직한 것들이어서, 아마 그들도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걸 내보이면 안된다. 최후의 최후에 결국 말하는 것이 그것들이어야, 그들도 미련을 갖지 않고 풀어줄 테니 말이다.
루안나는 표정을 싹 바꾸었다. 나약한 얼굴로 늘어져서, 언제 올지 모르는 심문관을 기다렸다.
끼익-
문이 열리고 청녹색 장발의 여인이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루안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카르텔 간부 중 하나인 제나. 스턴건이라 불릴 만큼 섬광류탄을 잘 쓰는 여인이었다.
"흠, 어디 보자……"
그녀는 서류철을 살피면서 들어섰다. 그러더니 루안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연기는 그만하고 고개부터 드시지?"
그 말에 루안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속을 드러낼까, 아니면 계속 숨길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모험가가 자신을 팔았단 소릴 들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자신에 대한 것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럴까."
루안나가 기세 좋게 웃자, 제나는 코웃음을 치며 서류를 읽어내렸다.
"어디보자- 잿빛 장미 루안나. 청부업자이고 총격술이 주특기로군. 지금까지 벌였던 일들이 카르텔 간부 스물 여덟 사살. 붉은 가면 콘테, 짧은검 스록, 방화광 요시케…… 오호, 쌍권총 비나도 니가 죽였어? 잘됐네. 나한테 찝쩍대는 거 귀찮았는데. 뭐, 이외에도 카르텔에 손해를 끼쳤다 하니……"
제나는 서류철을 덮고 그것으로 루안나의 머리를 툭 쳤다.
"그래, 어쩔래? 다 불고 금방 죽을래, 아니면 질질 끌다가 죽을래."
"하- 살아남는 건 없나봐?"
"우흐흐…… 이봐, 너 같으면 네 조직에 손해를 입힌 년을 살려주겠어?"
"원래 전쟁이란게 그렇잖아. 손해를 입으면 이득을 얻을 수도 있는 거고…… 하기 나름이지?"
"그러니까 네가 이득이 될 수 있단 거니? 응?"
루안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나는 씩 웃으며 그녀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제법 굽이 있는지라, 가볍게 찬 것이지만 상당히 아팠다. 정강이엔 멍이 푸르게 깔렸고, 루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까불지마. 당장 피부를 벗겨 소금물을 뿌려도 넌 할 말 없어."
"정말 거래 하지 않을 거야? 아주 좋은 정보인데 말이야. 거기서 더 높은 직급 얻어야지. 안그래?"
능청스런 루안나의 질문에, 제나는 잠깐 마음이 동했다. 실상 그녀는 첩보전을 포함한 정보전엔 둔했다. 물론 이런 심문 역시 처음이었다. 그래서 루안나의 대화에 정신이 팔리고 있었다. 물론 그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그녀도 카르텔의 간부였고, 루안나의 의도 역시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손해는 아니란 것이다. 상부에서도 적당히 처리하라고 했으니 정보 몇 가지를 캐내어 보고하면 공을 인정받을 것이다. 설사 아니더라도 확인하는덴 오래 걸리지 않으니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
"말해봐."
한편 루안나는 일이 쉽게 풀릴 거라 확신했다.
'어설퍼!'
루안나가 이런 쪽으론 경험이 충분했다. 물론 몇 번 모진 고문을 당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 위기를 다 피해갔다.
'이미 반은 넘어왔어.'
어느 누구도 심문을 하면서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일단 몇 번 고문을 시행한 뒤에 심문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물론 루안나처럼 정보를 팔 의지가 충분하다면 그러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보다 완벽한 진실을 위해선 고통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나는 그걸 어긴 것이다!
"근데 아무리 좋은 정보여도 내 목숨까지 살려줄진 모르잖아?"
그 말에 제나가 뺨을 씰룩였다. 밀고 당기려는 것을 눈치챈 제나는 루안나의 뺨을 틀어쥐었다.
"까불지 말랬지, 내가?"
"아닌게 아니라, 내가 죽을지 아닐지 확정도 못짓는데 순순히 내 카드를 보여줄 수 없잖아? 그러니 거래를 하잔거지. 몇 가지 정보를 줄테니 그게 사실인지 확인하라고. 그 다음에 날 풀어주면 내가 더 좋은 정보를……"
"밖에 누구 없나!"
제나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소리쳤다. 병사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섰고, 제나는 몇 가지 도구를 준비하라 일렀다. 그러나 루안나는 겁먹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겁주기에 불과했다. 더 이상 나대지 말란 무언의 압박. 속으로 크게 웃은 루안나는 물통과 바가지, 수건을 보았다.
물고문인가- 루안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아니, 이봐…… 정말이라니까……? 나 죽기 싫어. 괴로운 것도 싫고. 그러니까……"
"잡아."
"네."
도구를 들고온 병사가 루안나의 목을 등받이에 바싹 붙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물에 적신 수건이 텁 덮였다.
?!
루안나는 살짝 놀랐다. 설마 다짜고짜 이럴 줄이야. 하지만 참기로 했다. 예상 밖의 상황이었지만 아예 가정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한계선을 넘은 변수일 뿐, 조금만 참으면 결국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갈 것이다.
쪼르륵-
물이 흘렀다. 축축한 수건에 물이 흐르자, 그녀의 호흡기를 전부 막아버렸다. 잠깐 숨을 참는다해도 소용이 없었다. 루안나가 버둥거리자, 병사가 힘주어 그녀의 머리를 잡았다.
"읍! 으읍!"
제나는 천천히 물을 부었다. 루안나가 더 격하게 발버둥칠 때까지, 그녀는 물을 계속 부었다. 이윽고 루안나는 얼굴에 척 들러붙은 수건을 떼내려고 온힘을 다했다. 그러나 쇠약해진 몸에 가빠진 숨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잠시 후, 제나가 턱짓으로 병사가 손을 떼게 하고 수건을 들춰냈다. 그러자 루안나가 헛구역질과 기침을 섞었다.
"말할 생각이 드나?"
"허억…… 헉…… 잠깐 숨좀 돌리고……"
"잡아."
"자, 잠깐만…… 정말 숨이 차서……!"
제나는 다시 수건을 덮고 물을 부었다. 그렇게 몇 번 고문을 하고 나서야, 루안나가 입을 열었다.
"말할게…… 말할 테니까…… 컥꺽……"
제나는 턱짓으로 병사를 보냈다. 루안나는 숨을 고르다 힘겹게 고갤 들어 말했다.
"일단 내가 아는 건…… 내가 잡혔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지가 있단 거야……"
"병력과 정확한 위치는?"
"그건……"
제나가 병사를 부르려하자 루안나가 다급히 말했다.
"전부 12개 분대……!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정찰이 주 임무라고 했어! 난 거기서 게릴라 역할을 맡은 거고!!"
그 말에 제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루안나는 정말 당황했다. 예측할 수 없는 초보가 이렇게 위험하다니! 하마터면 실신할 뻔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건 그녀의 예상대로 갈 것이다.
그 이후로 몇 번의 고문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건 루안나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어느 부분에서 그만둘지, 말을 걸어올지 대답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까지 말이다. 물론 제나로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자잘한 정보를 내뱉으면서, 그녀의 의도대로 흘러갔으니 말이다. 그래서 제나는 특단의 조취를 했다.
찰각-
그녀의 목과 손목, 발목에 새까만 고리가 끼워졌다. 반들반들하고 묵직한 그것이 채워지자 루안나가 제나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뭐야?"
"못된 고양이 버릇을 고쳐줄 목걸이지."
지금까지 루안나는 고문에 대해서 격렬한 반응을 보였지만, 제나는 여유롭단 걸 알 수 있었다. 그중 세 번이 성고문이었는데, 수십 명의 남자를 상대하면서도 지쳐할 뿐 정신은 말짱했다. 며칠 잠을 안재워도 그대로, 불편한 자세로 몇 시간을 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정말 질겼다. 차라리 죽여버리는게 제나에게 편할 정도였다.
그때 생각난 것이 바로 이 고리들. 루안나는 속으로 웃었다. 대강 생각나는 것이 전기 고문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정도로 아파봐야……
삑-
지직-
근데 생각 외로 아프지 않았다. 전신이 간질거렸다. 온몸의 신경이 하나하나 깨어나는 기분. 귀와 눈이 번쩍 뜨이고, 온 신경이 예민해졌다.
그때, 전류가 강해졌다. 온몸을 간질이던 것이 순식간에 피부를 꼬집고 때리는 듯한 격통이 찾아왔다. 그 순간적인 아픔이란, 이제까지 그녀가 겪어왔던 모든 것들을 비웃을 정도였다. 루안나는 이 순간만큼, 정말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이 고리들이 선사하는 전기 충격은 괴로웠다.
삑-
"커억…… 컥……"
"어때? 신형 전기 고문기는. 신경계에 가벼운 자극을 줘서 엄청 예민하게 만든 뒤에 충격을 가하는 거거든. 그래서 아무리 내성을 가져도 아플 거야. 말도 안나오지?"
그 말 그대로였다. 당장 사지에 힘이 풀려서 늘어졌으니 말이다. 제나가 속박을 풀어줄 정도면 이것의 성능이 어떤지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만큼 자신이 있단 소리였으니 말이다.
"자, 이제 말 안한 걸 뱉어볼까."
"하아…… 하아…… 살려준다고 약속하면-"
삑-
쟈쟉-
"끄…… 아악……!"
루안나는 단말마를 끝으로 그 어떤 소리도 못냈다. 전신을 간질이는 그 고통에 의자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곤 바닥을 미친듯이 굴렀다. 하지만 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걸 멈출 수 있는 건 제나의 리모콘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구두가 루안나를 걷어차고 머리를 짓밟았다.
삑-
"허억…… 헉……"
"어때? 아직도 거래하고 싶어?"
사실 당장에라도 말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아팠다. 그래서 루안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말할게……"
루안나는 비장의 한 수를 남겨두었다. 그렇다고 지금 털어놓는 정보들이 약하단 건 아니었다. 하나같이 굵직한 것들이었고, 제나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모든 걸 들은 후, 제나는……
삑-
"아아악!"
다시 전기를 켰다. 방금보단 약했지만 결코 멀쩡한 정신으로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루안나는 버둥거리며 제나의 하반신을 끌어안았다. 이 정도 전기면 그녀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다. 그 생각으로 들러붙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멀쩡했다.
"네 몸에서만 전기가 돌게끔 설계를 해뒀다고. 설마 나까지 통하리라 본 거야?"
"전…… 브우…… 마, 말했…… 잖아……! 왜……!"
"말했잖아. 못된 고양이 버릇 고쳐줄 거라고. 그 말싸가지부터 바꿔야지."
"이 개년아……!"
루안나는 발악했다. 그러나 제나는 자비없이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렇게 루안나가 실신할 때까지, 전기는 계속 됐다. 제나는 오줌을 지리며 기절한 루안나를 보며 실실 웃었다. 그리곤 그녀를 버려두고 밖으로 나섰다.
신형 고문기의 효과는 대단했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그녀의 둔감해진 모든 감각을 깨워주었다. 그 효과가 어느 정도냐면 각성제를 투여받은 정도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고문은 더 효과적이었다. 특히 성고문 쪽으로 효과를 발휘했다. 숨만 닿아도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라, 병사들도 만족했다.
다만 루안나는 죽을 맛이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십수 번의 오르가즘에 노출됐다. 뺨이라도 때릴라치면 발버둥을 쳤다. 그야말로 '개조'된 루안나는 제나가 찾아오길 기다렸다. 제나가 찾아오지 않는 시간은 그녀가 말한 정보를 확인하면서, 루안나가 회복하길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동안 병사들이 몇 번 찾아와 성욕을 풀곤 했다. 성고문을 따로 하는 게 아니어도, 병사들이 자처한 것이다. 그 사이, 견디지 못한 루안나가 마지막 정보를 풀어냈다. 바로 황군의 뼈있는 지휘관의 정보였다. 특히 그들이 벌일 작전과 위치는 아주 고급 정보였다. 그래서 제나는 봐서 살려주겠단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왔다.
"하아…… 하아……"
루안나는 내심 기대했다. 이제 더 캐낼 건 없다. 그렇다면 편히 죽여주거나, 아니면 풀어주거나…… 선택을 해줄 것이다. 그러나 제나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다더군."
"어-"
순간 루안나는 탄식했다. 자신의 정보를 팔아넘긴 누군가가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뭘 말할지 알고 대처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걸 예상하지 못하다니! 정신이 나가버리면서 그런 간단한 것도 잊어버릴 줄이야! 루안나는 제나가 리모콘을 드는 걸 보았다. 화들짝 놀란 루안나가 소리쳤다.
"아, 아냐!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 게 아냐! 이제까지 전부 사실을 말했는데 이제 와서 왜 거짓말을 하겠어?!"
삑-
지직-
모든 걸 알리는 전기 자극. 그것만으로도 루안나는 공포스러웠다. 큰 고통을 알리기 직전의 신호나 다름없었으니, 그걸 몇 번 당한 루안나에겐 소름끼치는 감각이었다.
"살려고 꾸며낸 게 아니야! 정말이라고! 날 팔아넘긴 새끼가 분명……!"
그러나 제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사, 살려줘……"
구걸했다.
"안돼, 하지마! 죽여버릴 거야! 정말이야!"
협박도 했다.
"씨발 그만하라고! 내 말 못믿어? 지금까지 뭘 들었는데!"
욕도 했다.
그러나 제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루안나의 심리는 여러 번 바뀌었다. 말투 역시 그랬다. 그러는 사이 전기 자극이 조금씩 강해졌다. 루안나는 지쳤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고 싶어하는 추악함이 그녀를 막아섰다.
뚝-
물방울이 떨어졌다. 식은땀과 섞인 눈물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살려주세요……"
루안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너무 아파요…… 이제 그만해주세요……"
루안나는 처음으로 빌었다.
"두 번 다시 까불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이것 좀 꺼주세요……"
루안나는 처음처럼 약해졌다.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할게요…… 부탁이에요…… 제발…… 제에발……!"
삑-
리모콘은 꺼졌다. 제나는 무심하게 다가오더니 구둣발을 슥 내밀었다. 그 의미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 루안나가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바닥을 짚고, 다리를 끌며 기었다. 그리곤 제나의 구두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제나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잿빛 장미는 황군과 모험가를 노리는 꽃으로 새롭게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