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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차이 1화

'또 졌어...'


모두가 시끌벅적한 성적 발표 날. 지혜는 자신의 성적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지혜의 모습을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성적표를 바라보고 있겠지 하고 착각하고 있겠지만 사실 지혜는 고개를 숙여 표정을 숨기고 성적표를 구기며 이를 갈고 있었다.

성적 자체는 어디가서도 인정 받을 우수한 성적이였지만 어떤 사실에 때문에 지혜는 자신의 성적이 못마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최민지...'


누군가의 이름을 마음 속 깊은 울림으로 부르며 지혜는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였다 든 탓에 앞머리카락이 난잡하게 지혜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지혜의 시선은 교실 중심에서 모두에게 둘러싸여 칭찬받고 있는 한 여자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최민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성적에 등수가 있다고 가정하면 최민지가 1등, 김지혜가 2등이였으므로 민지뿐만 아니라 지혜에게도 제법 관심이 향해야 정상이였다. 이렇게나 극단적으로 최민지와 김지혜에게 향하는 관심이 다른 이유는 누가 봐도 미녀에 착해보이는 최민지와 다르게 김지혜는 아무도 접근하고 싶지 않게 생긴 추녀였기 때문이였다.


기본적으로 키 158cm 임에도 85kg의 몸무게를 가져 뚱뚱하다고 평가되는 몸매에 돼지같이 넓적한 코와 여드름 투성이인 피부,끔찍할 정도로 나쁜 시력 탓에 끼고있는 알이 두꺼운 안경과 그 탓에 작아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지혜는 첫인상은 당연히 최악이며 대화를 그다지 오래 하고 싶지 않은 여자였다.


반면 최민지는 윤기나고 우아한 검은색 생머리와 미소를 지을 때 마치 천사의 미소처럼 보이는 크고 속눈썹 짙은 눈과 오똑하고 작은 코, 작고 귀여운 입술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미인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지혜보다 민지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혜 본인만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큭, 저딴 얼굴이 뭐가 좋다고.. 나도 이렇게 태어나고 싶은게 아닌데!'


철저한 외모지상주의인 세상에서 외모론 최하층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추하게 태어난 탓에 지혜는 스스로의 외모에 극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소심하고 주눅들어 있었으며 태어나자마자 받아온 차별과 조롱 때문에 과거엔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집이라도 잘 살면 성형수술 같은 희망이라도 있었겠지만 그녀의 집은 반지하방에 항상 집에 들어가면 눅눅한 장판이 발에 쩍쩍 달라붙고, 여름엔 쪄 죽을 듯한 더위와 겨울엔 얼어 붙을듯한 추위가 멤도는 집이였다.


그런 인생을 살아왔기에 지혜는 악착같이 공부했다. 독한년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라도 성공하고 싶었다.


남들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언젠가 내가 너희보다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집념을 기반으로 밤 잠을 극심히 줄여서까지 해온 공부를 통해 얻어낸 우수한 성적이였다.

실제로 그녀는 지금까지 1등을 놓친 적 없었고, 그로인해 주변으로부터 선의의 관심이 아니였더라도 어느정도의 인정과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인정과 대우를 해주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공부비법이라도 얻어내려는 간사한 사람들이 다수였겠지만 지혜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더욱 독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성적만이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고 지혜는 그것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줄 알았다.

최민지라는 여자를 만나기 전까진.


'뭐라고?'


최민지를 만나고 성적표를 받아든 지혜는 믿을 수 없었다.


'내가 2등?'


처음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매일 새벽 3시까지 공부하고 잠은 고작 2~3시간 가량만 자면서까지 공부하는 지혜였다. 그런 자신이 2등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지혜는 대체 누가 자신의 위에 오른 여자인지 찾아서 원인을 알아내려고 했다. 그리고 그 날 지금까지 지혜가 굳게 믿어왔던 세계가 무너져내렸다.


최민지에 대한 지혜의 첫 인상은 누가봐도 미녀, 자신이 남성이라면 내심 성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여자. 그럼에도 자신보다 똑똑한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 최민지였다. 가뜩이나 미남미녀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지혜는 어떻게든 최민지를 이기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지만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최근 시험에서까지 져버렸다.


모든 것이 축복받은 듯한 여자를 만나고 지혜의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한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냉방기구라곤 낡아빠진 선풍기만이 털털 돌아가는 집을 뒤로하고 지혜는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했다. 항상 그렇듯 그녀가 버스를 타거나 걸어가면 그녀의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인상을 찌뿌리거나 걸음을 빨리해 지나쳐가며 그녀를 피했다.


항상 그런 취급을 받아온 지혜는 이제는 사람들의 반응에 무덤덤해지고 있었다. 과거엔 그런 취급을 받을 때 마다 두고봐라! 하는 심정으로 더욱 열정을 불태웠지만 최민지를 만난 뒤로는 그냥 수긍하고 인정해버리고 있었다.


못생긴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라고 지혜는 생각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도착하기 직전 간단하게 마실 것을 사려고 편의점에 들어간 지혜는 제로콜라를 사서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어? 지혜야!"


익숙한 목소리가 지혜를 불렀다. 듣고싶지 않은 목소리에 움찔! 놀라며 지혜는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최민지가 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얼굴에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친구들 중에는 지인으로 보이는 남자들도 몇 있었다.


'왜 여기서까지 만나는거야? 제발 꺼져..!'


밖에서 만난 최민지는 평소와 다르게 힘줘서 꾸민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그녀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지혜는 더 이뻐보이는 민지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 지혜와 가까워진 민지는 지혜가 들고있는 가방을 흘낏 보더니 말했다.


"공부하러 가는거야? 날씨도 더운데 쉬엄쉬엄하지.."


"으...응 뭐, 나는 이게 취미라서..헤헤"

항상 속으로는 최민지를 욕하는 지혜지만 사실 그녀가 이렇게 말을 걸면 적대감은 커녕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지혜였다. 그야 그럴것이 현실에서 지혜와 민지는 급이 달랐고 민지는 운동신경이나 여러가지면에서도 지혜를 앞섰다. 괜히 적대했다간 뼈도 못추릴 것이 분명했다.


'누구야?'라고 민지의 친구 중 한명이 물었다. 항상 민지와 같이 붙어다니던 이혜윤 이라는 여자였다. 민지는 혜윤에게 '응, 그냥 반 친구' 라고 대답하곤 지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혜야 미안해, 혹시 지금 돈 있어?"

"어? 돈?"


갑작스레 돈을 달라는 말에 지혜는 당황했다. 자신의 지갑속에는 공부하러 간다는 딸이 기특해 없는 살림에도 밥값하라며 아버지가 주신 꼬깃꼬깃한 만원 한장이 전부였다.


"미, 미안 나 돈이 없어서."

시선을 피하며 지혜는 거부의사를 보였다. 이것마저는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아하하.. 그러지말고. 지갑이지 그거? 잠깐 확인 좀 할게?"


하체비만인 탓에 지혜의 바지주머니에선 누가봐도 지갑으로 보이는 형상이 튀어나와 있었다. 지혜는 아차 싶었지민 민지가 이미 멋대로 지갑을 꺼내간 뒤였다. 지혜가 얼마나 오래 썻는지 모퉁이가 닳아버린 지갑을 열더니 민지는 미소를 지었다.


"만원 있네. 미안한데 이것 좀 빌려갈게. 나중에 줄테니까. 정말 급해서 그래."

사실 만원은 정말 별 것 아니였다. 아버지가 주신 소중한 돈이라고 생각하면 귀중한 것이긴 하지만 나중에 민지에게 돈을 받으면 그만인 문제였다. 하지만 하필 그 돈을 가져가는 것이 최민지라는 것이 원인이였다. 지금까지 지혜가 가져온 가치관과 노력을 모조리 망가뜨린 여자가 이제는 자신의 지갑을 멋대로 가져가더니 돈을 취하려고 하고 있었다.


"시, 싫어.. 돌려줘!"


지혜는 민지의 손에 들린 만원을 휙! 하고 가져가며 소리쳤다. 그 순간 아주 살짝 손목에 닿았을 뿐인데 민지가 꺅!'하고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웅크렸다. 일은 순간적으로 벌어졌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남자 중 한명이 지혜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치며 끼어들었다.


'뻐억!'


"아악!"


"이 씨발련이 좋게좋게 말하니까 미쳤냐? 민지야 괜찮아?"


지혜에게 험악하게 소리치며 폭력을 가한 남성은 민지에겐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민지는 울상이 되어 손목을 움켜쥐더니 말했다.


"으응.. 그냥 살짝 친 정도야. 괜찮아."


"다행이다. 너 다쳤으면 큰일날 뻔 했어."


누가봐도 심하게 다친 것은 지혜였다. 맞은 뺨은 크게 부풀었고 땅바닥에 뒹굴어 흙투성이가 되었으며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지의 친구들은 모두 민지를 걱정하고 있었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번씩 쳐다만 보고 그대로 갈 길 가고 있었다.


"그냥 가자 민지야. 쟤 생긴거 보니까 돈에 뭐 세균같은거 개 많을 것 같아."


민지의 친구 중 한명이 민지를 달래며 지혜를 노려보곤 말했다. 민지는 여자애들의 부축을 받으며 지혜에겐 사과 한마디 없이 그대로 떠나버렸다. 그 순간 지혜는 보았다. 아주 살짝 한심한 것을 보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최민지의 미소를.


한참 주저앉아 지혜는 최민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일어나 몸에 잔뜩 묻은 흙먼지를 털곤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내가 못생겨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거야.'


'내가 못생겨서 맞은거야.'


'내가 못생겨서 내 편은 아무도 없는거야.'


얼마나 울었을까. 지혜의 눈에선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쨍쨍하던 해는 뉘엿뉘엿 지며 노을을 만들고 있었고, 지혜의 주변에는 책가방과 휴대전화, 지갑등 소지품들이 난잡하게 뿌려져 있었다. 자신의 분노를 못 이긴 그녀가 화풀이로 던져버린 것 들이였다.


지혜는 지금 도서관 옥상에 올라와있었다. 그녀는 오늘 이곳에서 죽을 생각이였다.


"알고 있었어. 나같은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걸. 이미 태어나버렸으면 그냥 주제파악하고 살아야했다는 걸."


자신의 외모를 저주하며 지혜는 중얼거렸다. 목소리의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옳게 가는거야. 지금부터라도.. 죽으면 되는거잖아."


지혜는 옥상 난간으로 가까이 걸었다. 저 아래 사람들이 작게 보였다. 이대로 뛰어내리기만 하면 끝이였다. 하지만..


"..그치만 싫다고. 이대로 죽고싶지 않아! 내가 왜 죽어야하는거야? 태어날때부터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여자때문에?! 불공평해! 불공평해 불공평해 불공평하다구!"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정말 생각없는 존재일 것이다.


지혜는 억울함과 분노에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쳤다. 그때였다.


"불공평하다라.. 그럼 너는 신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건가?"


"..?!"


언제부터 본 것인지 옆에서 갑자기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깜짝놀란 지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여자? 남자? 성별을 알 수 없게 생긴 그 사람은 지혜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 손은 얼음같이 차갑고, 또 강철같이 무거웠다.


"이대로 죽는다고 그 애가 과연 진짜 불행해질까?"


지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지? 그 애? 최민지를 말하는 걸까? 하지만 어째서 아는거지? 그보다 누구야?


미지의 공포감에 굳어버린 지혜에게 그 사람은 살며시 웃으며 지혜에게 노트를 건넸다. 자신이 분노로 던졌던 노트 중 하나였다.


"기회를 주마. 나를 즐겁게 해봐라."


지혜는 알 수 없는 존재가 건네주는 노트를 조심스레 받았다. 노트를 받자마자 마치 누군가가 이끄는 것처럼 노트를 펼쳤다. 노트에는 자신이 적은 적 없는 자신의 글씨체로 '최민지'라는 이름과 함께 그녀에 대한 정보가 주르륵 적혀있었다.


"이게 무슨..."


다시 고개를 들자 의문의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지혜는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어이! 거기서 뭐하는거여?"

마치 짠 듯한 타이밍으로 옥상문이 열리며 수위아저씨가 들어왔다. 지혜는 그제서야 정신이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으며 허겁지겁 물건들을 주우며 외쳤다.

"죄송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대충 가방에 물건들을 쑤셔박은 지혜는 바로 자신의 집으로 달렸다. 부풀어 오른 뺨은 어느새 붓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집에 돌아간 그녀는 자신을 맞이하는 부모님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자마자 노트를 다시 펼쳐보았다.

역시 최민지다.

자신조차 알지못하는 그녀의 생리주기나, 신체건강 상태, 사생활등이 모두 상세히 적혀있었다.


"말도 안돼."

의문의 정보에 그녀는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그녀가 몰랐던 최민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집도 잘 살고.. 외모도 이쁘고.. 머리도 좋고.. 쳇 단점칸은 공백이야? 완전무결하다는건가?'


그다지 보고싶지 않은 정보에 지혜는 혀를 찼다. 그러나 이내 노트에 적힌 어떠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본 노트에 적힌 내용은 소유자가 임의로 수정 가능함'


"이게..뭐야? 수정 가능하다고?"


지혜는 더욱 노트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지혜의 눈이 반짝 빛났다.

(구)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차이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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