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물에 샤워를 한 탓일까.
흥분했던 머리가 차갑게 식으면서 지혜는 현실을 보게 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정말 반영이 될지, 만약 반영이 된다면 어떻게 망칠지가 우선이야."
정보의 수정 진실여부를 떠나서 만약 지혜가 최민지의 정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하루 아침만에 변한다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다.
지혜는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의 비참함처럼 최민지가 차근차근 조금씩 인생이 망가지며 폐인이 되기를 바랬다.
단순한 추녀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왔던 상위 카스트의 고귀한 이미지에서 억지로 추한 모습을 보여서라도 타인에게 비웃음을 원하고 그것에 흥분해 절정하는 그런 망가진 인생으로 만들고 싶었다.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 앞에서 더러운 행동이나 천박한 개그가 일상이 되는 그런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차근차근 조금씩 침식해 갈 필요가 있었다.
적을 알고 자신을 알면 백전백승이랬던가?
지혜는 우선 노트에 대해 정보를 얻기로 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최민지에 대한 정보를 읽으며 혹시라도 있을 노트에 관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어차피 밤 늦게까지 안 자는 것은 그녀의 특기였고 남는 것이 시간이였다.
'읏.....차'
약 새벽 2시무렵 너무 오래 숙이고 있어 굳어버린 목과 어깨를 기지개로 피며 그녀는 노트를 덮었다. 그리곤 다른 수첩을 꺼내 알아낸 정보들을 적기 시작했다.
1)노트에 적은 정보는 수정이 가능하며 본인에게 반영
2)노트에 적힌 정보는 실시간으로 반영되며 그녀의 행동을 따라간다.
3)기묘하게도 노트는 끝이 없다. 페이지가 부족해서 정보를 못 얻거나 수정이 불가능한 일은 없는 듯 하다.
4)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트 페이지 귀퉁이를 찢어보려했으나 무슨 짓을 해도 찢기지 않았고 도구를 이용해도 오려지지 않았다.
'당장 알 수 있는 건 이 정도 인가'
지혜는 볼펜의 끝으로 수첩을 톡톡 치며 생각했다.
'어차피 시기도 여름방학이니 약간의 신체변화정도는 방학 기간동안 생활핑계를 댈 수 있어'
지혜는 우선 노트의 수정범위가 어느정도 허용되는 지 알고 싶었다. 그렇기에 아무거나 수정내용을 쓰려고 했지만...
"막상 쓰려니까 막막하네. 뭐가 좋지?"
노트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민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다. 민지는 지금 술집에서 신분을 속이고 술을 마시다가 방금 화장실로 갔다고 했다. 그 문장을 보자 문득 방금전에 봤던 문구가 생각났다.
"변비로 5일간 고생 중...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드디어 처음.
노트의 능력이 진짜인지 아닌지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배가 아파 싸려고 노력하지만 싸지 못한다. 허나 복통은 멈추지 않는다.'
'내일 김지혜에게 빌린 돈을 갚고자 주변을 통해 김지혜의 집을 알아내 찾아온다.'
'김지혜의 집에서 심한 복통을 느껴 화장실을 빌린다'
'화장실을 빌리지만 우렁찬 방귀만 뿜어대고 변은 보지 못한다.'
"우선 이정도만 써볼까?"
이 정보 수정을 통해 지혜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3가지였다.
첫째는 미래의 행동까지 결정할 수 있는가.
둘째는 그녀 자신은 어떤 생각으로 이 노트에 적힌 정보대로 행동하는가.
세번째는 이 노트로 신체 생리현상까지 조절 할 수 있는가 였다.
"내일이 기대되는 걸"
지혜는 노트에 대한 설렘은 잠시 접어두고 노트를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부디 빨리 내일 최민지가 찾아오길 바랄 뿐이였다.
한편 최민지는 지혜에게 빌린 돈으로 산 담배를 입에 물고 술집 화장실에 앉았다.
"어휴. 드디어 신호가 오는건가. 망할 변비..."
본래 변비가 심했지만 길어야 3일이였거늘 이상하게 5일째 신호가 없더니 이제서야 신호가 온 것이다. 최민지는 하복부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역시 음주 후 똥싸면서 피는 담배가 제 맛..이지 흡...!"
만약 지혜의 수정이 없었다면 민지는 여기서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아무리 힘을 줘도 복통만 있을 뿐 볼 일을 볼 수 없었다.
"어? 왜 이러지?"
다시 한번 흡! 하고 힘을 줘 보았지만 그녀는 변은 커녕 방귀조차 나오지 않았다. 물고 있던 담배가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실수로 씹어버려 구겨져버렸다.
"아, 씨발 뭐야...!"
구겨진 담배를 집어 던지며 민지는 다시 한번 힘을 주기 시작했지만 마치 무언가가 막고있는 것 처럼 나오지 않았다.
"제발... 제발 나와줘, 으 으..."
기도하듯 쥐어짜봤찌만 결국 실패하고 그녀는 배를 살살 문지르며 화장실을 나왔다.
'담배도 못피고, 똥도 못 싸고 씨발.'
결국 담배는 나가서 피려던 민지는 문득 오늘 낮에 본 지혜의 얼굴이 생각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왔다.
'시발, 괜히 착해빠져서 그딴 년한테도 죄책감 느끼네. 나란 여자'
민지는 자신이 이쁜 걸 알고있는 여자였다.
예쁜 애들은 얼굴값을 한다고, 자신의 외모를 기반으로 공부, 운동, 사교능력까지 다 갖춘 완벽한 미인.
이걸 기반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 돈 많고 잘생긴 자기 수준에 맞는 남자와 결혼해 평생을 놀고 먹는다는 게 그녀의 미래 계획이였다.
'마침 잘 됐네.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린 돼지년에게 어떻게든 돈을 갚으려고 수소문하는 나. 이거 나쁘지 않은 걸'
민지는 휴대폰을 켜 자신과 같은 학원의 친구들에게 귀여운 이모티콘까지 써가며 김지혜의 집주소를 물어봤다.
자기가 살짝 찍어놨던 훈남 민철이에게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당연히 답장은 김지혜를 찾는 이유를 묻는 말이였고 그녀는 자기 자신을 포장하여 '차비를 잃어버려 어쩔 수 없이 빌렸지만 소중한 돈인 것 같아 표정이 안 좋아보여 하루 빨리 갚으려는 나'로 만들었다.
그녀의 이미지 탓일까?
친구들은 민지에게 너무 착하다거나 김지혜에 관련된 험담을 하며 고작 만원이 아깝냐 꼴값 한다거나 하는 다양한 답변들을 보냈고 민지는 그것에 대해 공감하는 척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하. 씨발련들 말 존나 많네. 그래도 뭐 이정도면 됐지."
민지의 추천으로 학원 반장이 된 은혜가 담임 선생을 통해 알아낸 주소를 보내며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고 톡을 남긴 걸 보고 민지는 쓴 웃음을 지었다.
진짜 자신은 아무도 모른다. 김지혜같은 년 따윈 가볍게 밟을 수 있는 자신을.
그런 만족감도 잠시, 밀려오는 복통에 짜증내며 민지는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당연하겠지만 이 날 민지는 결국 싸지 못하고 계속 울상으로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다가 걱정하는 일행들에게 대충 생리핑계를 대며 술자리를 벗어 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간만에 설레임을 느꼈던 탓일까? 지혜는 일찍 눈이 떠졌다.
대충 씻는둥 마는둥 하고나서 바로 노트를 펼쳐본 지혜는 어젯밤 민지의 행동에 대해 기가 찼다.
하지만 쓴대로 고스란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했다. 평소의 그녀라면 또 분노와 열등감에 휩싸였겠지만 그녀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제 최민지의 위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지혜는 조급해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곤 해도 황당한 건 황당한거지. 처음이라 시도만 해보려했는데 벌을 줘야겠어.'
지혜는 이미 적은 항목 중 앞으로 일어날 항목에 대해 지우려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어라? 설마..."
노트에 이미 적은 수정사항에 대해선 변경이 불가능 한 것 같았다. 우연찮게 알아낸 지혜는 수첩에 정보를 적으며 미소를 지었다.
"변경이 되지 않는다면, 추가하면 그만이지"
그러곤 지혜는 무언가 슥슥 적었다. 그때. '띵-동' 오래된 집에서 들리는 깨지는 듯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왔다!'
지혜는 잠옷차림으로 헐레벌떡 현관문으로 향했다. 이미 누구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그녀는 연기하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지혜야~ 나야 민지. 혹시 시간있니?"
지혜는 평소의 자신처럼 문을 반쯤 열고 민지를 바라보았다.
민지는 세상 하늘하늘한 원피스로 자신의 몸매의 완벽함을 자랑하듯 당당히 서있었다. 그 모습은 어제 자신의 돈을 뜯었단 일진 최민지와 전혀 달랐다.
"무, 무슨 일이야? 우리집은 어떻게 온거야?"
지혜는 겁 먹은 듯 조심스레 물었다. 민지는 멋쩍게 웃으며 자신의 지갑에서 만원을 꺼냈다.
"이거 어제 빌린 돈이야. 소중한 돈인거 같아서. 반 친구들에게 물어봐서 알아왔어."
진실을 알고 있는 지혜는 속으로 비웃으며 조심스레 돈을 받으며 말했다.
"고, 고마워. 정말 받아도 돼?"
"그럼~ 갚는다고 했잖아?"
지혜는 주섬주섬 돈을 받으며 말했다.
"더, 덥지 않아? 물 한잔 할래?"
지혜에게 있어선 당연히 집안으로 들이기 위한 목적이였지만 민지는 탐탁치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대충 씻다만 지혜에게서 나는 냄새도 역겨웠고
반지하방 특유의 분위기때문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아, 아니 괜찮아 나는...읏?!?"
평소처럼 자신답게 잘 거절하고 돌아가고자 했던 민지는 어제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복통을 느꼈다. 다만 이건 어제와 다르게 정말 진짜로 당장이라도 바지에 쌀 것 같은 복통이였다.
"왜그래? 민지야 무슨 일 있어?"
지혜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민지에게 물었다. 민지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지혜야 마침 목 말랐는데 물 한잔만 줄래?"
지혜는 들어오라는 듯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참지못한 미소를 짓는 것을 민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 그럼 잠시 기다려"
민지는 나름대로 아무렇지 않은 듯한 행동으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생각했지만 뒤에서 보는 지혜에게 있어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곤 엉덩이를 살짝 좌우로 흔들고 필사적으로 화장실을 찾는 듯한 민지가 너무나도 우스웠다.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지혜는 물을 따르러 냉장고를 향했다.
'저기구나!'
지혜가 뒤돌아 선 순간 화장실로 추측되는 곳으로 민지는 헐레벌떡 뛰어가 황급히 바지를 벗고 변기에 앉았다. 주위 상황따윈 가릴게 아니였다.
하지만...
'뿌우우우우우우우웅!!!!!!'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방귀소리. 한번도 이런 적 없던 민지는 너무나 놀라 엉덩이를 오므리고 말았다.
'뭐, 뭐야?!'
귀까지 새빨개진 민지였지만 오므린 엉덩이때문에 다시끔 밀려오는 복통때문에 계속 오므릴 순 없었다.
'똑똑똑'
"민지야 괜찮아? 무슨 일 있어?"
화장실 문 너머로 지혜가 문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사실 다 알고 있지만 그녀에게 더욱 더 비참함을 느끼게 하기위한 지혜의 연기였다.
"아, 아니야 그냥 흐읍..!!"
'북.부륵 부륵부르르르르르륵!!!!!'
한계가 다다른 엉덩이에서 또 다시 방귀가 뿜어져 나왔다. 화장실을 울리는 소리는 분명히 바깥까지 들릴터였다.
'뭐야 나 왜 이래 대체 어제부터!'
민지는 당황한 나머지 대충 마무리하고 일어서려 했지만 노트의 수정력은 그렇게까지 만만하지 않았다.
"아, 안돼!"
'뿌웅 북 부르르르르륵 푸다닥!!!!'
뱃속에 남은 잔 가스를 남기지 않겠다는 듯 방귀는 뿜어져 나왔고 이내 기세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뿌륵'
비참함에 푹 숙인 민지의 엉덩이에서 마지막이라는 듯 방귀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민지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하필이면 저런 돼지년 집에서 이런 수모를 겪다니 저 년을 죽이고 입막음을 시킬까 생각까지 들었다.
"괜찮아? 많이 놀랬지"
지혜는 걱정하는 척 하며 알약과 물을 건냈다. 민지는 부끄러움에 묵묵히 받아들곤 물었다.
"이건 뭐야?"
지혜는 정말 순수하게 호의라는 듯 말했다.
"응 우리 할머니가 드시는 변비약이야. 가끔 너처럼 방구만 부륵부륵 뀌시는데 그거드시면 바로 쑥 싸시더라고"
"너....!!"
민지는 지혜의 말에 더욱 부끄러워졌다. 지금까지 얕보던 지혜에게 이런 수모를 겪으니 정말이지 죽어버리고 싶었다.
"이딴거 내가 먹을 것 같...!"
본래의 민지였다면 그 약을 지혜얼굴에 던지고 쌍욕을 퍼 부었을 것이다. 그야 그럴게 지혜같은 바닥세계 사람들에게 까지 좋게 보일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이것은 지혜의 순수한 호의고 그것을 무시하는 건 나쁜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민지는 감사를 표하며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지혜에게 진 것 같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약 30분쯤엔 효과가 바로 나오니까 집에 얼른 가는게 좋아."
'30분이라고?'
약간 달동네에 있는 지혜의 집과 민지의 집까지는 30분만에 가기엔 무리였다. 민지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차라리 지혜의 집에서 30분 뒤에 싸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혐오감에 민지는 이 집이 싫어졌다.
"알았어 고마워, 그럼 얼른 가볼게!"
민지는 자신의 가방을 챙기고 내팽개친 신발을 정리해 신곤 밖으로 나갔다.
지혜는 어색하게 민지를 배웅하는 척 손을 흔들곤 현관문을 닫았다.
"멍청한 년, 30분 만에 못 가잖아? 집"
방에 들어간 지혜는 씨익 웃으며 노트를 바라보았다.
"이건 진짜였어. 이제 정말 더이상 의심하지 않아. 난 그년의 미래까지 조작 할 수있는 힘을 얻은거야."
앞으로 민지의 몸을 어떻게 바꿀까 계획을 짜며 지혜는 웃었다. 오늘부터 소수의 성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즐겨보는 것들을 찾으면서 정보를 모을 생각이였다. 우선적으론 그 완벽한 몸을 떨어뜨리고 생활 자체도 통제하고자 했다.
"최민지. 우선 그 더러운 것부터 말끔히 비우라고. 앞으로는 마음대로 싸지도 못할테니까. 아니, 다음에는 밖에서 지리게 해줄게."
지혜는 마지막에 노트에 적은 수정사항을 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최민지는 김지혜가 준 변비약을 먹고 필사적으로 인내해 집까지 참지만 화장실 변기 코앞에서 바지에 전부 싸고만다.'
민지가 이후 집에 도착한 후 일어난 일들을 노트를 통해보면 김지혜는 오랜만에 박장대소하며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