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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차이 15화

아직까지도 그렇지만.


민지는 자존심이 매우 강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지혜나 미령, 혜윤에게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좀 비굴해진 편 이지만 때때로 지혜를 바라보는 민지의 눈빛에 담긴 증오는 아직 민지가 포기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지혜는 그런 민지를 보며 민지의 자존심이 민지가 망가지지 않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18년 인생을 살며 한번도 약자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는 민지였다. 쉽사리 굴복할 리 없었다.


몸은 굴복하지만 마음은 꺽이지 않는다.

그런 여자였다. 최민지라는 인간은.


그녀의 프라이드를 산산조각내기 위해 지혜는 지금까지 노력했다.

노트를 이용해 그녀의 성격을 바꾸면 될 수도 있지만 그건 민지가 아닌 지혜가 만든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털을 기르고 방귀뀌며 군살 덩어리의 엉덩이를 흔들게 해도 소용없는 민지에게 지혜는 내심 언짢아했다.


그런 민지가 부디 개조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엎드려 애원했다. 자존심을 접고 자신에게 빌었다.

지혜에게 있어 이건 최고의 기회였다.


지혜는 이 기회에 민지의 자존심을 꺽고 수그리는 법을 조교시키기로 했다.

민지가 죽도록 싫어하는 벌칙을 걸고 미령과 혜윤에게 각자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했다.


미령과 혜윤 역시 지혜와 같은 생각이였기에 동의하며 각자 시간을 나눠 민지와 만나기로 했다.


민지는 단순히 개조를 피할 마지막 기회였지만 세 사람에겐 각자 민지를 망가뜨리기 좋은 순간이였다.



지혜는 자신이 먼저 민지를 조교하기로 했다. 그녀가 선택한 시간은 학원에 있는 시간 이였다.

하루의 반 가까운 시간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민지에게 제안할 게임의 난이도를 신중히 골라야만 했다.

물론 지혜 역시 민지가 벌칙을 전부 피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민지가 정말 자존심을 버려야 가능한 게임으로 준비했다.


민지는 생활관리 조교를 마치고 9일만에 학원으로 돌아왔다.

학원에는 무단으로 결석한 것이 되어 있었지만 민지는 이렇게 등교 한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주변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며 민지는 입을 가리고 해맑게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은 여전히 민지의 비위를 맞추려고 민지가 좋아하도록 맞춰주고 있었다. 이게 본래의 민지 위치였다.


원래라면 당연하게 받았을 이러한 대우는 아이러니 하게도 민지가 조교를 당하면서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민지는 이대로 일상을 보냈으면 했다. 당연하게도 그건 헛된 소망이였다.


"민지야 잠깐만."

민지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혜의 목소리에 민지는 정색하며 지혜를 바라봤다.

지혜는 실실 웃으며 민지에게 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 씨발년이...'

본래라면 저런 식으로 부르지도 못할 지혜였다. 저런 돼지년은 자신과 급이 다른 밑바닥 인생이였을 것이다. 민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뭐야 쟤?"

옆에 있던 민지의 친구들은 지혜를 보며 한마디씩 말했다.

"왜 친한 척이야? 민지야. 조질까?

"우웩 저 얼굴로 웃으니까 더 병신같네."


민지는 친구들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지마. 애들아. 그냥 할 말이 있나봐. 금방 올게."

민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혜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애초에 민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모인 집단은 민지가 나가자 말했다.

"쟤네 둘 저렇게 대화를 자주 했던가?"

"글쎄? 관심 없어서..."

"그보다 민지 쟤도 많이 갔다. 살찐거 봤어?"

"아프다잖아~ 뭐, 어디가 아프면 엉덩이가 그렇게 뒤룩뒤룩 살 찌는진 모르겠지만."

"그보다 그거 들었어? 누가 봤는데 민지 쟤 겨드랑이 털 정리 하나도 안한다던데?"

"헐. 그래서 요즘 쟤한테서 약간 냄새나는건가?"


민지가 친구라 생각한 아이들은 민지가 없어지자 최근 민지의 모습으로 이야기 주제를 바꾸었다. 본래 한참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사소한 변화는 금방 알려지는 편이였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가뜩이나 예뻐 내심 질투받는 민지의 변화는 아이들이 씹기 좋은 소재였다.



한편 이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복도로 나온 민지는 퉁명스런 목소리로 지혜에게 물었다.

"뭔데. 곧 아침조회 시작하니까 빨리 들어가야해."

민지는 학원에서 만큼은 지혜와 있는 자리를 최대한 피하려 했다.

옥상 같은 인적 드문 곳 에서라면 모를까 복도같은 보는 눈이 많은 장소에서 같이 있으면 괜히 친한 사이인줄 오해할까봐 싫어했다.

거기다 지혜가 민지에게 뭘 시킬지 몰랐기 때문에 붙어있으면 민지만 손해였다.


지혜는 그런 민지의 태도도 조만간 끝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저번에 말했던 벌칙갯수 줄이는 게임. 오늘 하려고 불렀어. 하지 말까?"

그 말에 민지는 떠올렸다.


자신의 몸이 수술 받는 걸 원하지 않았던 민지는 생활관리 조교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생활관리 후반부에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였다.

제대로 재워 주지도 않던 시간표 탓에 마지막의 기억은 거의 없었고 무엇을 실수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민지가 그나마 정신이 들었을 땐 일주일이 지나있었고 벌칙 갯수는 22개였다.


그 이후 민지는 갯수를 줄이기 위해 셋이 제안하는 게임을 하기로 카메라에 대고 약속했다.


날짜는 정해지는 대로 알려주겠다더니 설마 이렇게 빠르게 할 줄은 몰랐다.

민지는 긴장한 나머지 침을 삼키며 물었다.

"뭔...데"


지혜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침 조회 시작부터 오늘 4교시 끝날 때 까지.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빼고 교실에서 방귀 뀐 횟수 만큼 벌칙 줄여줄게. 횟수 제한 없이 마음대로 줄일 수 있으니 너무 쉬울까봐 방귀는 시간마다 최소 한번은 뀌어야 하고 이건 카운트하지 않을거야. 대신 안 뀌면 벌칙 두배로 늘릴게?"


"뭐?"

민지는 지혜의 제안에 귀를 의심했다.

지금까지는 최소한 아는 사람 앞에선 공개적으로 망신 당한 조교를 받은 적 없는 지혜였다. 최근 아이들에게 도시괴담 비슷하게 카페에서 똥 싸는 듯한 방귀를 뀌는 여자애나 패스트푸드집에서 햄버거 8개 먹는 여자애 같은 민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온 적은 있지만 어차피 모른 척 하면 그만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건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민지의 학원내에서의 위치를 위협하는 게임이였다.


지혜는 말했다.

"어차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방귀는 무조건 주변 네명 이상 반응할 정도여야 해. 너라면 쉽겠다 그건 방귀소리 하나는 진짜 크잖아? 아 참 괜히 다른애들이 의심받아 억울해하지 않게 누가 뀌었는지 찾으면 너인건 항상 밝히고."


반에서 뭘 하라고?

민지는 머리가 하애졌다.

방금전까지 웃고 떠들던 친구들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지혜의 제안을 받으면 그 친구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뭐~ 안해도 괜찮아. 다른 두 사람과 다르게 나는 많이할 수록 좋은거 내준거고. 그냥 벌칙 22개 받던지? 선택은 너한테 있으니까ㅋㅋ 나는 나름 많이 줄이라고 무제한으로 할 수 있는거 제안한거거든? 미령언니나 혜윤이는 어떨지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곤 지혜는 웃으며 반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서 민지네 반 담임이 아침조회를 위해 교실로 오고 있었다.

민지도 사형장에 향하는 죄수같이 지혜를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아침조회가 시작되고 담임은 뭐라뭐라 말했지만 민지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1교시부터 4교시.

쉬는 시간을 빼면 점심시간 전까지 200분 정도의 시간이고 그건 약 3시간 20분 정도의 시간이였다.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이였다.


그 시간동안 최대한 많은 방귀를 뀌어야 한다.

민지는 도저히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침조회가 끝나고 1교시 담당 교사가 웃으며 들어왔다.

"안뇽 애들아~"

"안녕하세요!"


1교시는 역사수업이였다. 담당 교사는 평소 유머러스해 인기 많은 젊은 여교사였다.

민지와도 서로 간혹 장난치며 놀 정도로 친한 교사였다.


'하필이면...'

민지는 생각했다. 사실 어떤 교사가 오더라도 곤란하긴 마찬가지였다.


"어? 민지왔네. 몸은 괜찮아?"

자신을 걱정하는 교사의 말에 민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교사는 싱긋 웃더니 수업을 시작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울리던 교실은 이내 교사 말소리를 빼곤 필기소리나 책 넘기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쩌지?'


가뜩이나 학원을 자주 빠져 집중해야하는 민지지만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수업 중에 최소한 한번은 방귀를 뀌어야만 했다.


'벌칙 22개...'

지혜의 말마따나 지혜가 제안한 게임 자체는 갯수를 많이 줄일 수 있는 게임이였다.

지혜의 말이 진짜라면 이 뒤에 있을 미령이나 혜윤은 민지가 하기에 한정된 게임을 제안할 수도 있었다. 만약 불가능한 미션을 낸다면 이 기회를 놓치면 22개 벌칙 고스란히 받게 될 판이였다.


방귀소리라도 작으면 좋겠지만 노트의 존재를 모르는 민지는 언제부턴가 방귀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에 대해 곤란해하고 있었다.


막막한 심정에 주변을 둘러보던 민지는 지혜와 눈이 마주쳤다.


지혜는 씨익 웃으며 손으로 숫자 22를 보여줬다. 하지 않으면 저 숫자가 44개가 될 판이였다.


민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곤 스스로 자기최면을 걸었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한다... 해야 한다...


민지는 평소 자기관리를 하며 완벽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걸던 자기최면을 이젠 교실에서 방귀뀌기 위해 걸고 있었다.


마음은 먹었지만 지혜나 혜윤의 탓에 평소에도 야외에서 방귀를 많이 뀌기도 하고 굴욕을 당한 민지지만 아는 친구들 사이에서 방귀뀌기는 쉽사리 되지 않았다.


"오늘은 이쯤할까?"


교사의 말에 민지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시간을 보니 정말 수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벌써?!'

민지가 잡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벌써 쉬는시간 10분 전이였다. 이대로 1교실 보내면 남은 2.3.4교시에 져야할 부담이 더 늘어났다. 갯수 줄이기는 미루더라도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위해 한번은 뀌어야 했다.


민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쩔 수 없어.'

이제 민지가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운명에 맡기는 것 이였다. 민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엉덩이에 서서히 힘을 주었다. 혹시라도 좀 조용한 방귀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였다.


당연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뿌아아아아앙!'

조용하던 교실에 천장이 무너지는 듯한 방귀소리가 울렸다. 아이들은 일제히 웃음이 터지며 웅성거렸다.

"아 뭐야 ㅋㅋ!"

"테러다, 테러"

교실내의 분위기는 비웃는 아이, 황급히 창문을 여는 아이, 너야? 너야? 하며 범인을 찾는 아이 등 제각각 이였다.


역사를 가르치던 교사도 웃겼는지 농담조로 말했다.

"야! 누구야 ㅋㅋㅋ 이따 교무실로 따라와."

여교사는 별 생각없이 흘리듯 한 말이였다. 설마 범인이 자백하겠어? 생각했다. 그때 민지는 오른 손을 들었다.


"응? 민지야 왜 질문있어?"

"....니다."

웃는 소리에 민지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교사는 외쳤다.

"조용! 민지야 뭐라고? 다시 말해줄래?"


교사의 말에 소란이 조금 잦아든 교실은 민지에게 시선이 몰렸다. 민지는 시뻘개진 얼굴을 숙이며 말했다.

"지금...방귀 뀐거 접니다... 죄송합니다.."

자포자기한 민지는 한번 더 엉덩이에 힘을 줬다. 차라리 지금 연달아 뀌는게 이상하지 않을 듯 했다.


'뿌웅!'

재차 방귀소리가 울리자 아까까지 웃던 아이들은 민지의 행동에 웃음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몇몇은 혐오감드는 시선으로 민지를 보고있었다.

'이 짓 해서 1개...'

고작해야 벌칙 1개 줄이고 이런 수치라니. 민지는 생각했다.


"으..응 그래. 다음부턴 조심하자."

교사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애써 넘기고 수업을 마쳤다. 교사 역시 당황 했는지 서둘러 교실을 나갔다.


'띵동댕동'

얼음같은 분위기는 쉬는시간 종이 울리며 민지의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일어나는 아이들이 생기자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민지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아무하고도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주춤주춤 몇명의 아이들이 민지에게 다가왔다.

"민지야 괜찮아? 보건실 갈까?"

"배아프면 그럴 수 있지. 나도 집에서 더 심해."


아이들은 조심스레 민지를 위로했다. 민지는 고마웠지만 이들의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앞으로도 2.3.4교시가 남았다. 계속 이런 분위기가 될 것이였다. 지금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넘기는 게 상책이였다.

"...아냐 고마워. 신경쓰게 해서 미안해."

민지는 친구들을 안심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연 4교시가 끝나면 저 애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민지는 멀지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걱정했다.



2교시는 수학시간이였다.


성실학원은 반을 묶은 뒤 수학과 영어 성적에 따라 A,B,C로 나눠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수업해 성적을 향상시키는 이동수업 방식을 하고 있었다.

예를들어 2학년 1반부터 3반까지 묶고 4반부터 6반까지 묶고 1반은 A반,2반은 B반 이런식으로 나눴다.


학원생들은 수업 시작 전에 각자 정해진 반으로 가 수업을 받아야 했다. 다른 반으로 가 모르는 자리에 앉는 방식때문이 간혹 책상서랍에 꽁쳐둔 젤리 등이 없어지거나 책상에 낙서가 되있는 일이 있기도 했다.


민지와 지혜 역시 교과서와 필기도구를 챙겨 반으로 향했다. 2학년 5반인 민지와 지혜는 4반으로 향했다.

둘 다 전교 1,2등이였기에 반은 당연히 A반이였다.


이동수업의 특징은 다른 반 아이들도 함께 섞여 수업을 받는다는 것이다. 민지는 별로 이건 좋아하지 않았다. 이동하는 게 귀찮은 것은 아니지만 4반을 좋아하지 않았다.


민지가 4반으로 들어서자 구석진 곳에서 떠들던 몇 몇 무리들이 민지를 노려봤다.


그 중심에는 송은영이 있었다.


지혜같은 아예 밑바닥이 아니라면 남고에서 남자들 사이에서도 서열과 친한 그룹이 있듯 당연히 학원의 여학원생들도 친한 그룹과 서열이 존재하며 알 게 모르게 치열한 서열 싸움이 있었다.


남학원생들이 단순하게 웃긴 놈, 힘 쎄거나 잘생긴 놈이 최고라면 여학원생들은 기가 세고 이쁜애들이 인기가 많았다.


성실학원 최고 미인 하면 대부분 민지를 뽑았지만 은영 역시 드문드문 뽑힐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민지가 김태희나 이영애같은 미인상이라면 은영은 경리같은 느낌의 미인상이였다.

은영 역시 성적이 좋아 전교 11~18등 사이를 왔다갔다 했고 운동신경도 꿀리지 않는 편이였다.


자연스럽게 자신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에 별 신경쓰지 않아도 어느샌가 그룹의 리더로 올라가는 민지와는 다르게 은영은 자기 편을 만드는데 항상 필사적이였다. 은영은 딱히 망가지는 걸 신경쓰지 않았고 민지보다 훨씬 인간미 있었으며 자신의 친구를 건들면 눈을 뒤집고 달려들었다.

그래서인지 은영의 주변 인물들은 민지에 비해 은영과 더 돈독한 사이가 많았다.


학원 초기에는 민지와 은영 둘다 서로 각자 방식으로 친한 그룹을 만들며 딱히 견제하지 않은 채 지냈었지만 성실학원 체육대회때 둘의 사이는 파탄나고 말았다.


성실학원은 학원생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매년 체육대회를 열었다.

짝수 반은 청팀, 홀수 반은 백팀으로 나눠 이어달리기, 피구, 발야구 등을 했다.

1학년때 같은 반이였던 은영과 민지는 이어달리기 선수로 참여했다.


은영과 민지 둘다 달리기를 매우 잘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은영은 5번째, 민지는 6번째로 마지막 주자를 맡게 되었다. 나름 연습도 많이 했고 열성적인 담임 선생님의 코칭도 있었기에 은영은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근소한 차이로 은영팀은 이기고 있었고 은영은 전 주자가 바톤을 넘기자 마자 있는 힘껏 뛰었다. 은영의 반 아이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은영은 민지쪽으로 달렸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은영은 그만 발을 헛디뎌 흙먼지 가득한 운동장에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쓸린 오른팔은 벌겋게 부어올랐다.

아이들의 탄식소리가 들리며 바짝 추격하던 청팀은 은영을 지나쳤다.


은영 역시 이 악물고 빠르게 다시 일어나 민지에게 달렸다.


은영의 실수로 차이가 벌어지긴 했어도 역전 못 할 정도는 아니였다.

민지를 믿으며 은영은 있는 힘껏 달려 민지에게 바톤을 넘겼다.


"미안해, 민지야. 달려..!"


민지는 바톤을 받자마자 달렸다.

처음엔 미안한 마음에 민지를 바라본 은영이였지만 이내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민지는 연습때처럼 달리지 않았다.

딱히 전력으로 뛰지 않고 설렁설렁 달렸고 당연히 청팀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반 친구들은 목이 터져라 민지를 응원했다.


결과는 당연히 패배.

아쉬워하는 애들을 뒤로하고 민지는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으며 학원 건물로 향했다.


민지가 물을 마시고 있자니 은영이 다가왔다.

"왜...그랬어?"

민지는 은영을 쳐다봤다. 은영은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친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바로 민지를 따라왔다.


"뭐가?"

민지가 묻자 은영이 외쳤다.

"너 진심으로 안 뛰었잖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은영이 따지자 민지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민지는 은영에게 말했다.


"니가 돼지같이 살쪄서 넘어져서 진 걸 왜 내 탓해?"

"뭐?"


은영은 충분히 마른 몸이지만 민지에 비하면 약간 통통해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않았다.

"너 지금..!"

민지는 마신 종이컵을 버리곤 은영을 지나치며 말했다.

"어차피 진 거 체력 아끼겠다는데 지랄하지마. 진건 니탓이니까."


건물을 나가는 민지를 보며 은영은 이를 갈았다.


이 날 이후. 민지와 은영은 서로를 싫어했다.


2학년 4반은 은영의 반이였고 은영 역시 A반 이였다. 은영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싫은 민지지만 지금까지는 그나마 위안 삼을 게 있었다.

혜윤은 6반이였고, 수학성적이 좋아 A반이었다. 민지의 A반 옆자리 짝은 운좋게도 혜윤이였고 민지와 혜윤은 둘이 같이 앉아 교사 몰래 속닥거리며 장난을 치곤 했다.


당연히 지금은 꿈도 꾸지 못 하는 일이였고 민지의 옆자리에 앉은 혜윤은 민지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고 시큰둥하게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민지는 혜윤과 친했던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민지 친구 혜윤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이미 지혜가 민지에게 제안한 게임을 알고 있던 혜윤은 민지에게 말했다.

"내 옆에서 방귀뀌면 오늘 점심에 죽을 줄 알아."

민지는 당황했다. 뀌지 않으면 벌칙이 늘어났다.

민지는 혜윤에게 자비를 구하려고 했으나 최악의 타이밍으로 학원 선생이 들어왔다.

최악의 2교시가 시작되었다.



수업시간은 하염없이 가고 있었고 혜윤이 옆에 있었기에 민지는 이도저도 못하고 굳어있었다.


이대로 가면 21개로 줄인 벌칙이 42개로 늘어날 판 이였다.


민지는 어찌할 줄 모르며 시계를 바라봤다.


수업은 2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끝났나... 민지는 생각했다. 그때였다.


"이 문제. 나와서 풀어 볼 사람?"

교사는 칠판에 문제를 적고 물었다. 민지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제가 풀고 싶어요."

교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민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앞으로 걸었다.


'지금 해야만 해. 지금 아니면 안돼...!'


혜윤의 옆자리가 아닌 교실 앞에서 방귀뀌면 지혜의 명령도, 혜윤의 명령도 모두 지킬 수 있다. 지금이야 말로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송은영...!'

문제는 송은영이였다. 민지는 저 여자 앞에서 만큼은 죽어도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교사가 내민 분필을 받고 문제 앞에 서며 민지는 생각했다.

남이 보면 문제를 고민하는 척 보이겠지만 지금 민지의 머릿속에는 방귀와 은영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민지는 지금까지 받은 굴욕을 떠올렸다. 그래, 아무렴 송은영 앞에서 창피한게 조교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민지는 최악보다 차악을 고르기로 결심했다.


'뿌욱!'

교실의 앞에서 방귀소리가 울렸다.

민지가 문제푸는 걸 보고있던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민지를 바라봤다.

"....미안해."

민지는 차마 뒤로 눈 돌릴 용기가 없어 얼굴을 붉힌 채 칠판에 얼굴을 고정시켰다.


그리곤 연달아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부악~'

"크흠...괜..괜찮니? 많이 급해?"

민지의 옆에 있던 교사는 민망한 나머지 걱정하는 척 물었다.

민지는 문제의 답을 서둘러 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배가 아파서... 죄송합니다.."

이걸로 벌칙은 20개. 20개....


의식을 최대한 벌칙갯수 에만 집중하며 민지는 수치심을 줄였다. 빨개진 얼굴로 후다닥 자리로 돌아갔다.


A반 학원생들은 차마 민지의 심기를 건들까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민지는 가장 의식하고 있던 송은영을 조심스레 쳐다봤다.

은영은 책상에 올린 옷더미 속에 손을 넣은 채 히죽거리고 있었다.


띵동댕동~


수업 끝남의 종이 울리고 모두 각자의 반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민지는 약간의 수근거림을 필사적으로 무시하고 반으로 도망갔다.


이제 3교시와 4교시가 남아있었다.





2교시 시작 전. 1교시 이후 쉬는 시간에 혜윤은 4반으로 찾아와

은영에게 귀띔했다.


"뭐? 휴대폰으로 영상찍으라고? 뭐를."


은영은 민지의 친구인 혜윤이 왜 자신에게 친한 척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또 최민지가 뭘 시켰나 의심했다.


"나 믿고, 최민지가 만약 수학시간에 교실 앞으로 나가면 영상 찍어."


혜윤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은영의 교실을 나갔다.

은영은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교실을 나가는 혜윤을 바라봤다.


"은영아 쟤가 뭐래?"

은영의 친구가 다가와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은영은 대충 넘기며 생각했다.


이걸 해? 말아?



은영은 2교시 시작 전 까지 답을 내지 못했다.

(구)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차이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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