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에게 노트에 대해 설명한 후 지혜는 은영과 민지를 데리고 지혜의 집으로 향했다.
오피스텔로 가고 싶었지만 거기는 미령이나 혜윤과 마주칠 확률이 높았다. 은영을 꼬시는 것은 지혜의 독단이기도 했고 혜윤을 대체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아직은 두 사람에게 걸리면 안됐다.
지혜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 지혜는 일부러 민지와 먼 자리에 은영과 앉았다.
혼자 버스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는 민지를 보며 은영은 물었다.
"쟤는 일부러 저기 앉힌거야?"
은영의 물음에 지혜는 노트를 꺼내며 대답했다.
"응, 솔직히 아직 너도 나를 못 믿을거잖아."
지혜의 말대로 은영은 아직 지혜를 믿기 힘들었다.
물론 민지가 지혜앞에서 촬영하면서 보이는 추태를 보면서도 못 믿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노트의 힘은 은영의 상상을 벗어나는 영역이였다.
지혜는 그런 은영이 자신을 믿게하기 위해서 일부러 민지를 멀리 앉혔다.
"이야기해준건 기억나지? 노트의 힘."
은영을 완전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지혜는 몇가지 거짓말을 섞으며 노트의 힘을 설명했다.
노트로 민지 말고 다른 사람을 수정할 수 있다는 진실과 대신 이 노트를 지혜가 아닌 다른사람이 쓰면 죽는다.라는 거짓을 섞어 은영이 혜윤과 다르게 자신에게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노트를 넘볼 수 없게 하려고 했다.
지금부터 지혜가 할 일은 자신을 더 믿을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은영이 지혜를 따르면서도 지혜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였다.
"이게 좋겠네."
지혜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노트에 '무좀때문에 발바닥의 가려움이 극심해짐' 이라고 적었다.
민지는 뒤에 앉아있는 지혜와 은영이 신경쓰여 불편한 자세로 앉아 경계하고 있었다.
노트에 대해 깨달은 이상 지혜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었던 민지는 지혜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걱정이 앞서고 있었다.
그때였다.
'앗..'
민지는 몸을 움찔하며 발을 살짝 톡톡치기 시작했다.
운동화 속 민지의 발이 마치 다한증 환자처럼 땀을 뿜기 시작하며 극심하게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지? 으윽!'
민지는 운동화를 조금 쎄게 버스 바닥에 문질러봤지만 소용이 없자 신발에서 발을 살짝 빼 운동화를 이용해 긁기 시작했다.
발은 조금 나아지나 싶었지만 이내 이정도로는 만족 못한다는 듯 또 다시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내 몸이 갑자기 이상해지는 걸 봐선 역시..!'
예전의 민지라면 바보같이 당하기만 했을테지만 민지는 노트에 대해 알고있었다. 민지는 고개를 홱 돌려 지혜쪽을 바라보았다.
지혜는 민지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민지는 얼굴이 새빨개진채 발을 동동 구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지혜에게 향했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지혜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민지를 무시하고 옆에 앉은 은영을 보며 말했다.
"봤지? 뭘 하던지 반응 온다니까."
은영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지혜는 노트에 적어둔 항목에 취소선을 그어 수정하곤 민지에게 말했다.
"그냥 뭐 좀 확인해봤어. 최민지라는 인간이 어떤 개목줄을 차고있는가에 대해서."
"이.."
민지는 지혜의 대답에 속에서 끓어오르는 수많은 욕설이 입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할 수 없었다. 분하긴 해도 지혜의 말대로 민지는 지금 개목걸이를 차고 있는것과 다름 없었다. 괜히 지혜를 자극해봤자 자신만 더 괴로워질 뿐이였다.
"다 왔다. 내리자."
민지가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지혜만 노려보자 지혜는 버스 하차벨을 누르며 말했다. 둘 사이에 낀 은영은 어쩔 줄 몰라하며 지혜의 말에 따랐다.
지혜의 집은 아무도 없었다. 지혜는 그나마 넓은 거실에 가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은영에게 말했다.
"미안, 우리집은 에어컨 없어서 좀 더울꺼야. 그래도 괜찮지?"
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힐끔 민지를 바라보았다.
"...최민지?"
민지는 고개를 푹 떨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지혜가 잊고있었던 것이 떠올랐다는듯 자신의 머리를 탁 치며 말했다.
"아! 맞다. 민지는 우리집 들어오면 자동으로 저렇게 돼."
여름방학때 설정한 항목을 잊고있던 지혜는 마침 잘됐다는 듯 말했다.
"잘됐네. 민지야 가서 냉장고에 있는 물좀 떠와. 세잔."
민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장고가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은영은 지혜의 옆에 앉았다.
"진짜 노트가 굉장하네.. 그래서 최민지가 여름방학 끝나고 저런 꼴로 학교에 온거구나."
민지의 엉덩이는 여전히 컸고 그 탓에 치마는 터질듯이 부풀어 있었다. 학교에서 민지의 엉덩이는 언제나 뒤에서 수근거리는 놀림거리였다.
지혜는 은영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게, 내가 생각해도 저건 진짜 잘 생각한 것 같아. 그보다.."
지혜의 말에 은영이 지혜를 바라보자 지혜는 말을 이었다.
"미안해. 솔직히 당황스럽지?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을텐데."
은영은 지혜에게 정곡을 찔렸다는 듯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은영은 내심 지혜의 행동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은영이 민지를 싫어하는건 사실이고 최근 악의적으로 민지를 괴롭히는건 맞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교내에서만의 일이였다.
그저 민지를 욕보이고 굴욕주는 것에 만족하던 은영은 원래대로라면 공부에 집중해야하는 2학년 2학기 중간고사부터는 민지에게 관심을 끌 예정이였다.
그러나 지혜가 하는 행동은 학교뿐만 아니라 최민지라는 여자의 인생을 아예 망가뜨리는 일이였다. 미래의 민지의 인생마저도 밑바닥으로 떨어뜨리고자 하는 악의적 행동이였다.
은영에겐 그정도까지의 행동을 실행할 배짱은 없었다.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질만도 했다.
그런 은영의 심리를 대충 짐작하고 있던 지혜는 노트를 보이며 말했다.
"나도 솔직히 여기까지 상황이 굴러오고, 혜윤이 때문에 지유나선생님 인생까지도 망가지게 되었을때 너랑 같은 심정이였어."
지금도 유나는 혜윤때문에 흉한 모습으로 밖을 걷고 있었다. 지혜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안돼. 나는 이제 최민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추락시켜야하는 사명을 받았어."
자신을 신이라고 지칭한 존재는 지혜에게 아름다움을 빼앗으라고 지시하며 노트를 주었다.
그것은 지혜의 인생을 바꿔주려고 한 지시가 아닌 존재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일종의 시련을 주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지혜는 자신이 갖는 부담을 덜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늘려야만 했다.
민지가 차가운 물을 떠오자 지혜는 가볍게 목을 축였다. 긴장하며 듣고 있던 은영 역시 지혜를 따라서 물을 마셨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혜가 마음만 먹으면 은영 자신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 굳이 이렇게 대화를 하는 이유를 은영은 알 수 없었다.
지혜는 그런 은영을 향해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를 도와준다면 은영이 니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해줄게. 이 노트로."
예상치 못한 말이였다. 은영이 지혜의 말에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지혜는 선수치듯 먼저 말했다.
"사람을 마음대로 다루는 노트라는건 결국 원하는 걸 모든지 할 수 있는 노트라는거니까. 굳이 은영이 너를 직접 조종안해도 타인을 이용해 이뤄줄 수 있어."
지혜의 말에 은영은 생각했다.
'확실히 저 노트라면 재벌을 조종해 돈을 입금시킨다던지 정치인들을 마음대로 조종한다던지 분명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결해줄 노트는 맞지만..'
이것은 독사과다. 라고 은영은 느꼈다.
지혜가 뭘 시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걸 따르려니 은영은 죽을 맛이였다. 하지만 그만큼 지혜의 제안은 달콤하게 다가왔다.
은영은 힐끔 민지를 보았다. 민지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지혜의 지시를 기다리듯 서있었다.
꽤나 시달렸다곤 하지만 은영의 눈에도 민지는 여전히 예뻤다.
물론 아까 본 알몸의 민지는 까맣고 거대한 유두에 달린 피어싱이나 뽈록 튀어나온 클리토리스. 항문에 방울 피어싱이나 겨드랑이 털등 분명히 흉하긴 했지만 그것들을 모두 가린 민지는 긴 생머리에 미인인 여자였다.
외형적으로 티가나는 엉덩이도 결국 취향에 맞는 남성을 찾으면 그만이였다.
그런 민지가 작년 체육대회때 자신에게 준 굴욕, 그리고 현실적으로 최민지를 뛰어 넘을 수 없기에 그저 부들댈 수 밖에 없었던 은영 자신..
'안 할 이유가 없네?'
나름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 행동이였을까.
은영은 자신이 지혜의 제안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지혜에게 대답했다.
"알았어. 니가 노트로 나를 조종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네가 시키는대로 해줄게."
내심 조마조마했던 지혜는 그제서야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설마, 친구를 그럴 수 있을리가 없잖아. 고마워 은영아."
혹시라도 은영이 거절할까봐 타들어가는 속이 풀려서일까. 지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아직 남아있던 물을 마시며 진정했다.
"그럼 앞으로 뭘 하면 될까?"
은영의 물음에 지혜는 노트를 펼치며 은영에게 펜을 보여주곤 살짝 흔들며 말했다.
"우선 니가 원하는 것부터 적자. 뭐가 좋아?"
지혜의 말에 은영은 내심 민지에게 하고 싶었던 일들이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구나 추잡한 취향은 있는 법이다.
동물과 성관계를 맺는 수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흉하게 뚱뚱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자신의 여자를 뺏기는 것에 흥분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상성욕이든 이상성욕이든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알리기 싫은 패티쉬라는게 있는 법이였다. 은영 역시 마찬가지다.
은영의 경우에는..
"그럼 민지는 뿡뿡이로 길들여도 되는거지?"
방귀였다.
정확히는 디그레이더. 남에게 모독이나 수치심을 주는 에세머이면서 그 소재가 방귀나 더티 쪽인 셈이였다.
은영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당황한 지혜는 되물었다.
"그래도 되긴 하는데.. 더럽지 않아?"
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더럽지. 그래서 좋은거잖아?"
이왕 이렇게 된거 자신도 추잡해지기로 결심한 은영은 지혜에게 숨김없이 밝히기로 했다. 지혜는 은영의 말에 할 말을 잃으면서도 내심 역시 은영을 고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에서 듣고있던 민지도 은영의 대답에 당황했다.
지금도 이미 지혜의 조교로 장 건강이 최악이 되어 가스가 자주 생성되는 몸인데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건지 두려웠다.
갈색 전신 타이즈를 입은 유나는 표정을 웃는 표정을 억지로 지으며 다리를 O자형태로 벌리고 길거리를 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원숭이가 뛰는 것 같이 흉해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수근수근 거리며 그런 유나를 비웃었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낀 유나는 제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툭 튀어나온 배를 통통 두드리며 소리쳤다.
"비키세요 비키세요!"
유나의 소리치는 소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한번 더 유나를 보고 비웃었다. 유나는 죽고싶은 심정으로 혜윤이 시킨 일을 계속 했다.
'약속시간 30분 전에 다리를 최대한 O자 형태로 벌리고 배를 치며 뛰어당기면서 땀을 흘릴 것.'
혜윤의 지시로 한참 뛰던 유나는 숨을 몰아 쉬며 잠시 멈춰섰다.
약속장소에 도달하기도 전에 자신의 엉덩이 사이와 겨드랑이, 배 아래와 가슴 아래가 땀에 젖어 흉하게 보이고 있었다.
이 상태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야하다니 유나는 믿기지 않았다.
그때였다.
"저기.."
누군가가 유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흠칫 놀란 유나는 대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처음보는 여성이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지금 뭐 하시는거에요?"
보기 흉한 유나의 모습에 혹시 괴롭힘이라도 당하나 싶어 여성이 물어보자 유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 지금 인터넷 방송 촬영 중이에요!"
물론 이 역시 혜윤의 지시였다.
'앞으로 선생님은 고등학교의 미녀교사 지유나가 아니라 어디 인터넷 방송 플랫폼의 광대녀 지유나로 사는거에요.'
여성은 아 그렇군요.. 멋쩍게 웃으며 화이팅! 하더니 제 갈길을 향했다.
유나는 자신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예쁘게 꾸미곤 제 갈길을 가는 뒷 모습을 바라보며 서러움이 몰려왔다.
우웅~!
유나의 휴대폰이 울렸다. 혜윤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약속시간이에요 선생님. 땀은 충분히 흘렸어요?"
혜윤의 물음에 유나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혜윤님이 시키신대로 몸을 한껏 달아오르게 해 갈색타이츠 위로 중요부위가 땀에 젖어 다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전화기너머로 혜윤의 웃음소리와 묘하게 탁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나가 그 소리를 생각하기도 전에 혜윤의 지시가 떨어졌다.
"좋아요. 그럼 남자친구 만나러 가보죠. 제가 말한 5가지 해야할 일 기억하죠?"
"..네"
유나는 많은 감정이 담긴 대답을 한 후 만나기로 한 카페로 향했다.
이 일이 끝나고도 남자친구가 자신을 사랑해줄까. 작은 의문을 가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