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이렇게 셋 입니다."
민지는 고민 끝에 정한 세명의 명단을 혜윤에게 건내주고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혜윤은 쇼파에 앉아 퉁명스럽게 명단을 받곤 확인하며 말했다.
"흠.. 이 셋이면 뭐 나쁘지 않네."
민지의 중학교 시절을 모르는 지혜와 미령은 어차피 명단을 봐도 모르기 때문에 확인하지 않았다. 문득 혜윤은 신경쓰이는지 민지에게 말했다.
"근데 민소희, 정아라 두 사람이야 뭐 원래 그렇게 친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지만 한소민 얘는 괜찮겠어 민지야?"
한소민이라는 말에 흠칫 민지는 놀랐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로만 지정하면.. 혜, 혜윤 주인님께서 화내실 것 같아서.."
"그건 그렇지. 하여튼 눈치는 더럽게 빨라요."
혜윤은 명단을 대충 옆에 두고 짜증내듯 말했다.
유독 따로 언급된 한소민이라는 이름이 신경쓰인 지혜가 혜윤에게 물었다.
"한소민이 누군데?"
혜윤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있어, 중학교 때 선도부원인데 유독 민지랑 친해서.. 어차피 저 년 성격상 졸업하고 입 싹 씻었지만."
혜윤의 말과는 다르게 한소민은 비교적 최근까지 민지와 연락했을 만큼 민지가 혜윤 제외 진짜 친구라고 생각한 몇 안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원래라면 한소민은 절대 안 부르고 싶었지만 아무리 목록을 봐도 최대한 피해가 적은 사람은 이 세 사람 밖에 없었다.
혜윤은 그렇게 말하곤 발로 민지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세 사람에게는 각자 내가 정해준 주제로 대화하면 돼. 하면서 마음에 안 들게 하면 그 자리에서 네 항문 자위 사진 전송시킬거야. 우선 문자부터 보내. 예전의 너처럼 나 최민지인데~ 한번 보자라고 너답게 일방적으로 말해.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지혜는 내심 기고만장한 혜윤의 모습이 우스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럼 잘 다녀와."
혜윤은 벌떡 일어나더니 민지에게 대충 밤색 티셔츠와 검은색 츄리닝 바지를 던져주더니 입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곤 화장실로 향하자 미령이 혜윤에게 물었다.
"어디 속 안 좋니? 오늘만 벌써 다섯 번이나 화장실 가는데."
혜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날이에요 그 날."
물론 거짓말이였다. 계속 팬티에 문질러지는 클리토리스 때문에 성욕이 쌓여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자위하러 가는 것이였다.
지혜는 미령과 눈을 맞추며 씨익 웃었다. 미령 역시 혜윤의 미래가 상상되며 기쁜 것인지 맞받아치듯 웃어주었다.
두 사람 앞에서 민지는 주섬 주섬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미모는 어디 안간다고 최대한 수수한 옷을 입었는데 불구하고 민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지혜는 내심 그런 민지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일로 나를 부른거야?"
번화가 어딘가의 카페.
민지를 일부러 다른 곳에 보내놓고 늦게 오도록 지시한 혜윤은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 있었다.
민지가 고른 인물 중 하나인 중학교 동창 민소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혜윤에게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너도 갑자기 연락 받은거야?"
혜윤이 예전 중학교 때 처럼 바보같이 웃으며 말하자 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에휴.. 아직도 최민지는 지가 여왕인 줄 알아."
민소희는 중학교 시절 혜윤과 민지 사이에 어떻게든 끼려고 발악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던 비유하자면 민지 친구 A같은 존재였다.
그런 민소희가 저런 말을 하다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혜윤은 꾸욱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럼 안 나오면 됐잖아."
민소희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 년 성격 알잖아. 괜히 자기 인맥으로 해코지 할까봐 나온거야. 해코지 할까봐."
혜윤은 민소희의 말을 듣자 민지가 학교에선 망가져도 인맥들은 아직 건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 밖의 장소에서 그 간 눈치 못 챈 사실을 깨달은 기분이였다.
'학교 뿐만 아니라 조만간 인맥 정리도 도와줘야겠네'
혜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했다.
"나도 그래. 이제 곧 오겠지."
"너는 같은 고등학교 가지 않았어? 요즘엔 어때."
민소희의 물음에 혜윤은 속으로 욕을 삼켰다. 요즘은 어떠냐고? 최민지 그 년 인생 망치니까 아주 속이 시원해. 라고 말하고 싶었다.
민소희의 기억 속 혜윤은 민지의 노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민지가 성실여고에 간다고 혜윤에게 가자고 하자 집에서 멀지만 망설이지 않고 따라간 중학교때의 혜윤이였으니 그렇게 기억 할 법도 했다.
"나도 똑같지 뭐."
과거 아무것도 모른 채 민지에게 속았던 사실이 떠오른 탓에 쓴 웃음을 지으며 혜윤이 대답했다.
그렇구나.. 중얼거리며 민소희는 주문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혜윤이 슬쩍 휴대폰 시계를 보니 민지에게 오도록 시킨 시간에 가까웠다. 곧 민지가 올 것이다.
"기다렸지 애들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민지는 딱 생각한 순간에 도착한듯 했다.
민지는 혜윤이 시킨대로 최대한 도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소희와 혜윤은 민지를 바라보았다.
"왔어?"
혜윤은 덤덤하게 받았다.
"안녕 민지야! 오랜만이야~ 왜 연락 안했어!"
민소희는 빌빌 기던 성격 어디 안간다고 민지를 보자마자 싹싹 애교를 부리며 인사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민지의 옷차림을 보고 욕을 하고 있었다.
'얘는 옷이 저게 뭐야? 그 최민지 맞아? 밤색 티셔츠에 검은색 츄리닝 바지.. 진짜 어이가 없네. 그리고 엉덩이는 또 왜 저렇게 커?'
민지가 입은 츄리닝 바지는 널널한 사이즈임에도 민지의 엉덩이는 터질듯이 빵빵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민소희는 속으로 온갖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민지는 아무렇지 않은 척 털썩 의자에 앉았다. 혜윤은 미리 받아둔 얼음물을 건내며 모르는 척 말했다.
"그래서, 왜 보자고 한거야 민지야?"
민지는 나는 몰라요 식의 태도를 보이는 혜윤에게 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거기까지 였다.
이미 거의 저항할 힘도, 기회도 놓쳐버린 민지는 얼음물로 목을 가볍게 축이곤 진지하게 말했다.
"실은 너희에게 고민상담할게 있어."
민소희는 그 최민지가 자신을 불러서까지 상담할게 있다는 말에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최민지는 예전부터 같이 붙어다니면 들어서 나쁠 것 없는 이야기들을 자주 했었다. 민소희도 쫑긋 귀를 세우며 중학교 졸업 이후 관심도 없던 자신이 들어야 할 정도의 고민이 뭘까 궁금해했다.
민지는 도저히 입 밖에 꺼내기 어려웠지만 민소희는 시작일뿐이였다. 벌써 혜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뒤가 더 힘들어 질 것이 뻔했으므로 말을 내뱉었다.
"요즘 겨드랑이랑 항문 냄새가 너무 심한데 어떡하면 좋을까?"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민지의 말에 민소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혜윤의 벌칙은 과거 민지를 망치기 위해 원래라면 절대 남에게 하지 않을 이야기를 스스로 꺼내도록 하는 벌칙이였다.
이야기 뿐만 아니라 주제에 맞는 광대플레이까지 미리 지시해둔 상태였다.
민소희는 민지의 고민에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다시 말해줄래? 내가 잘 못 들은건가?"
혜윤 역시 처음 들었다는 듯 연기하며 민소희에게 동조했다.
"맞아 민지야. 지금 뭐라고 했어?"
민지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팔을 휙 들고 밤색 티셔츠의 소매를 내려 털이 북실북실한 겨드랑이를 보이며 재차 말했다.
"너희 바보야? 왜 못 알아들어. 겨드랑이 냄새랑 똥꼬 냄새가 너무 심하다니까!"
그리곤 민지는 킁킁 자신의 겨드랑이에 코를 대더니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민소희는 민지의 겨드랑이에서 훅 퍼지는 톡 쏘는 듯한 여성 특유의 시큼한 냄새에 인상을 팍 구기며 고개를 홱 돌렸다.
최민지가 미쳐버렸나? 생각이 들면서 토하고 싶은 느낌을 간신히 억누르고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너 미쳤어? 우윽.."
혜윤 역시 바람잡이 역할에 충실하게 코를 막으며 말했다.
"우웩.. 민지야 너 병이라도 걸렸어? 냄새 진짜 역겨워.."
민지는 민소희의 반응을 이해하면서도 당연하게 굴욕적일 수 밖에 없었다. 민지 자신이 맡아도 씻는 것이 금지당하고 손질 조차 못한 겨드랑이 냄새는 역겹긴 했다.
혜윤의 지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민지는 벌떡 일어나더니 엉덩이를 민소희 쪽으로 쑥 내밀곤 말했다.
"이거 봐 엉덩이 냄새도 진짜 심하다니까?"
민지의 뚱뚱한 엉덩이에선 옷을 뚫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구린내가 퍼지고 있었다. 겨드랑이 냄새에 한번 고비를 넘긴 민소희 였지만 구린내로 또 다시 고비를 겪게 되었다.
"우윽..! 그만.. 치워!"
혜윤은 속으로 히죽거리며 벌떡 일어나 민소희에게 말했다.
"가자 소희야 쟤 이상해. 왜 저래?"
가뜩이나 비위가 약해 민지의 악취에 정신 못 차리던 민소희는 혜윤을 따라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진짜 씨발 개역겨워 최민지. 연락하지마. 앞으로."
혜윤은 민소희의 손목을 잡고 끌어 카페 밖으로 나갔다. 주변은 민지와 민소희가 소란스러웠던 탓에 슬쩍슬쩍 민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민지는 새빨개진 얼굴을 감싸고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곤 테이블에 엎드렸다.
민소희는 이제 또 어딘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퍼뜨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민지는 속이 쓰렸다.
민소희를 떠나보낸 혜윤이 카페에 돌아오자 민지는 벌써부터 혼이 나간 표정으로 얼음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혜윤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민지야.. 뭘 하면 냄새가 그렇게 역겨운거야. 민소희가 욕을 그렇게 하더라."
"...그만해줘"
민지는 울먹이며 혜윤에게 말했다.
"내가 잘 못 했어 혜윤아. 그때 내 말은 내 본심이 아니야. 사실은..!"
민지는 혜윤에게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노트가 있다. 김지혜의 짓이고 나는 반성하고 있다 라고 말하려고 했다. 혜윤이라도 마음을 돌려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혜윤이 먼저 민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제와서 머리박아봤자 되돌리기엔 늦었는데?"
"사실은.."
말을 이으려던 민지는 혜윤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혜윤의 말이 맞았다. 무슨 말을 하든 혜윤은 자신을 괴롭히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미 민지와 혜윤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 솔직히 김지혜에게 나를 조종하는 노트가 있어! 라고 한들 혜윤이 아 그래? 내가 구해줄게 민지야! 라고 할 일은 없었다.
혜윤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정아라 근처에 왔대. 준비해."
민지는 혜윤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아라는 민지와 친한 관계는 커녕 중학교때도 딱히 교류가 없던 친구였다.
그냥 공부를 잘해서 민지도 번호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고 연락은 한번도 하지 않았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연락을 할 줄은 몰랐다.
정아라 역시 민지와 만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최근 듣고 있던 소문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 최민지가 뿡뿡이로 불린다고?'
정아라의 친구 중 한 명이 이야기 해준 최민지의 근황이 너무 믿기지 않았던 정아라는 민지를 만나 확인하기로 했다.
"안녕 민지야, 혜윤이도 있네?"
정아라가 어색하게 카페에 앉으며 인사하자 혜윤은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안녕 아라야.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해."
혜윤은 정아라에게 먼저 인사하며 생긋 웃었다. 왜 친한 척이지? 아라는 생각하며 민지를 보았다.
"민지 너도 잘 지냈어?"
민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정아라는 뭐야? 자기가 불러놓고 라고 생각이 들며 괜히 기분이 언짢아졌다.
"민지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로 부른거야?"
정아라의 질문에 혜윤이 민지 대신 대답하듯 말했다.
"민지가 고민이 있대. 나도 그것때문에 왔어."
"고민?"
정아라는 혜윤의 말에 되물으며 민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민지는 심호흡을 한번 내쉬더니 말했다. 아까부터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신세인 것을.
"실은 고민이 있어. 벌써 한 달째 똥을 못 싸고 있어."
민지는 그 말과 동시에 방귀를 부르르르륵! 뀌었다. 정아라는 민지의 모습에 당황하며 코를 막았다.
"민지야 괜찮아? 윽?!"
민지의 방귀냄새는 정말 한 달 넘게 싸지 못한 사람마냥 톡 쏘면서도 독했다. 정아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보다 역겨운 냄새에 벌떡 일어났다.
"소문이 진짜 사실이였구나. 그 최민지가 뿡뿡이가 되다니."
온지 5분도 안되서 정아라는 그대로 가방을 챙겨 나가버렸다. 어차피 궁금한 건 지금 봐서 알았기 때문에 더 있어봤자 의미 없었기 때문이였다.
민소희에 이어 정아라까지 민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도 전에 훅 떠나버렸다.
혜윤은 민지 주변 냄새가 옅어질 때 까지 잠시 피해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말했다.
"이야.. 아무리 안 친해도 대화를 10분도 못 해? 하긴 뭐 네 이미지 망치는게 목적이니까 대화 길어지면 귀찮을 뿐이지만."
혜윤은 휴대폰으로 SNS를 하며 툭 내뱉었다.
이미 만신창이인 민지는 바닥만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떴다(부륵) 떴다(뿍!) 비행기~(부르르르륵!) 날아라!(뿍) 날아라!(뿌앙!) 높이, 높이 날아라(푸륵!) 우리 비~행기(뿌아아아아아악!)'
정신나간 벨소리가 울리자 황급히 민지는 전화를 받았다. 이미 카페의 몇 몇 사람들은 그런 벨소리를 듣고 웃거나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시선으로 민지를 보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민지가 조심스레 전화를 받고 말하자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민지야 나야 소민이. 어디로 가면 돼?"
소민이 만큼은 안 왔으면 했는데..
민지는 속으로 한탄하며 카페의 위치를 조곤조곤 한소민에게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