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윽..씨발년들.. 개같은 새끼들.."
쇼핑몰 여자화장실에서 화장하고 있던 여자 손님들이 양변기칸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거나 인상을 찌푸리며 하나 둘 밖으로 나갔다.
아까부터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화장실 칸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혜윤은 변기 위에 앉아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최대한 눈물을 삼키려고 노력 중에 있었다.
스스로 민지와 관련된 과거에 대해 담담해졌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혜윤의 착각이였다.
나름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애써 상처를 외면하고 누를 뿐이였고 도가 지나칠 정도로 누군가를 망가뜨리는데 집착한 이유 역시 끊임없이 받던 스트레스 때문이였다.
꾹꾹 눌러왔던 상처는 결국 같이 놀았던 소민마저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말이나 도움을 안 주었다는 사실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혜윤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똑똑똑'
그때, 누군가가 화장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혜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있어요.."
문이 잠겨있는 걸 보고도 뭐하러 두들기는거야..
혜윤은 속으로 생각하며 조금 진정하곤 눈물을 닦아내었다.
'똑똑똑'
그러나 밖에선 혜윤의 말을 무시하듯 다시 한번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혜윤은 가뜩이나 힘든데 왜 세상까지 괴롭히는걸까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 하려고 입을 열자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혜윤아. 좀 진정됐니?"
"..언니?"
혜윤은 미령의 목소리에 황급히 화장실 칸 문을 열고 나갔다.
미령은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혜윤의 눈을 보며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곤 말했다.
"괜찮니? 차 가지고 왔으니까 잠시 드라이브 갈까?"
혜윤은 어째서 미령이 자신이 있는 곳을 아는걸까 의문이 들었다.
쇼핑하러 간다는 말은 했었지만 정확히 어디로 간다고 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지금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것까지 알고 있는 미령에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있던 혜윤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미령에게 걸어가 안겼다.
"언니.. 흐으읏..!"
"그래, 괜찮아. 괜찮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렴"
혜윤은 미령에게 안겨 울기 시작했다.
미령은 그런 혜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달래주었다.
"..이혜윤, 주제파악만 했으면 우린 정말 좋은 친구가 됐을거야."
화장실에 미령만 들여보낸 지혜는 여자화장실 밖에서 대기하며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혜윤의 우는소리에 지혜는 씁쓸함을 느끼며 자리를 떴다.
혜윤은 미령에게 맡겨 심리적으로 좀 더 미령을 따르게 만들고 자신은 민지쪽을 맡기 위해서 였다.
"참.. 쟤도 피해자인데.."
혜윤의 과거를 노트를 통해 정확히 알고있는 지혜는 아마 혜윤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서 혜윤의 상처에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해줄 인물이였을 것이다.
본래 선한 성격의 혜윤이였기에 복수심에 눈이 멀지만 않았어도 선을 지켜 지혜와 좋은 관계를 쌓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
이미 노트엔 혜윤의 이름이 적혔고 지혜는 혜윤에게 복수를 시작했다.
지혜는 안쓰러운 마음을 애써 누르며 미령에게 맡기고 자신은 서둘러 민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소민이라는 새로운 인물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혜윤이 진실을 알고 충격을 먹은 상태로 떠난 이후.
민지는 혜윤이 없어지자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파악한 뒤 소민을 데리고 쇼핑몰에서 배치한 야외 테라스 테이블로 향했다.
테라스 근처 카페에서 음료와 디저트용 조각케익을 시킨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앉아 그간 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름방학 시작때부터 어느샌가 자신의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밝힌 민지는 진지하게 듣고있는 소민에게 하나 하나 있었던 일들을 말하고 있었다.
소민은 열심히 경청하려고 했으나 도저히 믿기지 않아 조각케이크를 한입 입에 넣곤 말했다.
"잠깐만 민지야. 말 끊어서 정말 미안해 근데.. 믿기지가 않아서.."
자신이 겪은 일을 기억을 되새김하며 말하다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는지 대화만 했을 뿐인데 민지는 초췌해보였다. 소민의 말에 민지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들려주었다.
바로 민지 자신의 벨소리로 설정되어 있는 정신나간 방귀벨소리였다.
잠깐 들려주자 소민은 경악하며 말했다.
"알았어 민지야 그만, 그만!"
소민은 민지를 말리며 디저트로 시킨 케이크를 한입 먹었다. 민지는 한숨을 쉬곤 말했다.
"이게 다 김지혜라고 우리 여고에 있는 왠 찐따년 때문이야. 소민아 나 좀 도와줘. 너는 걔가 어떻게 못 할 거야."
소민은 민지가 말해준 노트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을 멋대로 다루는 노트라니, 상식적으로 존재할 리가 없고 말도 안되는 비현실이였다. 그러나 눈 앞의 민지는 자신이 알던 민지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자연적으론 거의 불가능한 거대한 엉덩이나, 그 자존심 강한 민지가 겨드랑이털을 북실북실 기르고 벨소리도 방귀소리로 설정한다는 것이 민지의 말이 진실임을 말해주는 듯 했다.
소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어, 우선 조금 쉬면서 진정한 다음 너를 도와줄 방법을 찾아볼게."
민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민이 도와준다면 지혜가 예상 못하는 복병이 생긴 것이므로 어쩌면 그 잘난 척 하는 김지혜의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민은 어느새 조각케익을 전부 다 먹고 일어나며 말했다.
"아, 내가 점심을 안 먹어서 그런가. 배고프네. 하나 더 시킬게 너도 먹을래?"
민지는 소민을 보며 대답했다.
"아, 아냐. 너 먹어. 왠일로 많이 먹네."
소민은 꾸준히 운동하며 몸을 관리할 정도로 건강미 넘치는 몸이였다.
중학교때부터 소식하는 걸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지금은 고등학생이니 식성이 늘었을 수도 있겠구나 민지는 생각했다.
"그러게, 여튼 잠깐 있어."
소민은 민지를 보며 생긋 웃곤 카운터로 향했다. 민지는 그런 소민의 뒷 모습을 보곤 후우.. 하고 숨을 내뱉곤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민지와 지혜의 두뇌싸움은 민지가 철저하게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도 그럴게 민지는 노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몰라 무슨 힘이 있고 어디까지 가능한지 알지 못했고, 지혜는 민지의 생각이나 현재 하고자 하는 행동을 모두 예측할 수 있었다.
지금도 테라스와 멀지않은 곳에 숨어 노트를 통해 모든 걸 보고있던 지혜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결국 노트에 대해 말했구나. 최민지. 앞으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너 때문이야."
지혜는 어딘가로 시선을 향하며 펜을 꺼내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지혜의 시선 끝에는 카운터에서 케이크를 고르고 있는 한소민의 얼굴이 보였다.
'꾸르르르륵..'
"으윽..!"
민지는 갑자기 배에 미친듯한 복통이 밀려오자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며 배를 움켜쥐었다.
이 느낌은 방귀는 아닌 것 같았다. 긴장이 풀린 탓인가? 생각한 민지는 소민이 돌아오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얘는 왜 이렇게 안와..!"
조각케익은 보통 달라고 하면 바로 접시에 옮겨서 나오는 편이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민지는 오지 않는 소민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카운터로 시선을 향했다.
소민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조각케이크를 트레이에 담아 테이블로 오고 있었다. 민지는 그런 소민을 보며 깜짝 놀라 말했다.
"소민아! 너 왜 그렇게 많이 먹어?!"
마치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테이블에 케이크를 내려놓은 소민은 민지에게 말했다.
"응? 보통 이..정도 먹어야 해."
"뭐?"
소민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한 민지는 짜증난다는 듯 반문했다. 그러나 뱃속에서 꾸륵거리는 복통이 더 심했기에 민지는 말했다.
"아읏.. 도저히 안돼. 소민아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잠시 있어..!"
민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엉덩이는 무슨 본드를 붙여놓은 것 마냥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당황한 민지가 소리쳤다.
"뭐야..! 나 왜 이래?"
그때 스윽 하고 누군가가 민지의 뒤에서 민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민지는 갑작스런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지르고 뒤를 바라봤다.
"꺄아악!"
비명을 지른 민지가 뒤를 바라보니 김지혜가 생긋 웃으며 자신과 눈을 맞춰주었다. 민지는 당황해서 말했다.
"지, 지혜야! 니가 여길 어떻게.."
지혜 주인님이라 불러야 하겠지만 지금은 소민 앞이였다. 민지가 조심스럽게 묻자 지혜는 민지네 테이블 옆의 의자에 앉은 뒤 민지에게 말했다.
"네가 멋대로 노트에 대해 이야기 했잖아. 그 탓에 네 친구가 큰일났어."
"어?"
지혜의 말은 민지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혜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노트에 대해 멋대로 말하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게 돼. 너 때문에 니 친구가 저주를 받았다고."
물론 지혜가 이름을 적어놓고 속이려고 하는 거짓말이지만 노트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민지는 당연히 지혜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지혜의 말을 들은 민지는 그제서야 소민이 케이크를 가져온 뒤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소민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민은 텅 빈 눈으로 의자에 앉아 케이크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혜는 히죽 웃으며 민지 앞에서 노트를 펴더니 말했다.
"그럼 니 친구는 뭘 시켜볼까.."
민지는 그런 지혜에게 괴로워하며 소리쳤다.
"하지마..! 소민이는 관계 없어. 제발 그러지말아줘. 지혜야. 아니 지혜 주인님!"
민지의 간절한 외침에도 지혜는 소민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에 펜 끝을 톡톡 치더니 소민에게 말했다.
"역시 직접 듣는 편이 편하지. 이름이 한소민이라고 했지?"
소민은 텅 빈 눈으로 대답했다.
"네, 지혜주인님. 한소민입니다."
"소민아!"
민지는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발악하며 소민에게 소리쳤다. 저 증상은 자신이 미나라는 꼴사나운 인격으로 부려먹힐 때 많이 보이는 증상이였다.
소민이 자신과 같은 신세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민지는 필사적이였다.
그런 민지를 보며 지혜는 히죽 웃곤 소민에게 물었다.
"네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은 뭐야?"
지혜의 질문에 소민이 입을 열었다.
"저는.."
"안돼 소민아 제발..!"
민지는 이제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였다. 그런 민지를 무시하곤 소민은 말을 이었다.
"저는 뚱뚱한 사람들이 제일 싫습니다."
민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예전부터 소민은 뚱뚱한 사람들을 싫어했다. 민지의 엉덩이가 커졌을 때 소민이 과하게 놀란 것도 그 때문이였다.
지혜는 웃으며 물었다.
"그래? 어째서?"
"..뚱뚱한 사람들은 자기관리도 못하고 자제력도 부족해 뚱뚱한 것이면서 냄새나고 같이 있으면 덥고 원하는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소민은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자기관리의 신과도 같던 민지도 그렇고 본인 스스로도 선도부원까지 하면서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는 성격이였다.
반대로 뚱뚱한 사람들은 소민은 병적으로 싫어했다. 그 이유는 소민의 집안 때문이였다.
소민은 부모님과 언니, 동생까지 5인가족이였지만 이 중에서 날씬한건 소민 혼자였다.
예의상 통통하다고 표현하지만 확실하게 뚱뚱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부모님을 따라서 먹기만하니까 살이 뒤룩뒤룩 찐 언니와 동생.
그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온 탓일까? 소민은 그런 가족이 싫었고 뚱뚱한 사람들이 모두 자기관리를 못한 탓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소민은 더욱 필사적으로 운동했다. 가족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곤 노트에 무언가를 적으며 말했다.
"계획을 바꿔야겠다. 원래는 최민지가 케이크 다 먹기 전까지 화장실 보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먹는 대상을 바꿔야겠어."
지혜의 말에 민지가 말했다.
"제발.. 지혜주인님.. 소민이는 용서해주세요."
지혜는 민지를 이상하다듯 쳐다보곤 말했다.
"뭐라는거야. 민지야 이게 다 너 때문이라니까? 왜 멋대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거야."
'꾸르르르르륵'
민지는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더 심해진 복통 탓에 얼굴을 찌푸리기 밖에 하지 못했다.
지혜는 코웃음치며 소민에게 말했다.
"자, 그럼 소민아. 이제 의식이 돌아오는거야?"
지혜의 말이 끝나자 소민의 눈에 생기가 들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어? 나 분명 카운터로 향했던 것 같은데.."
정신이 든 소민의 눈에는 얼굴이 하애져선 잔뜩 식은땀을 흘리는 민지와 그 옆에 처음보는 못생긴 여자애가 눈에 들어왔다.
"민지야?"
소민이 민지를 보며 걱정스럽게 묻자 지혜는 민지의 입을 다물게하려는 듯 먼저 입을 열곤 말했다.
"안녕 소민아.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김지혜라고 해. 이 노트의 주인이기도 하고."
소민은 자신의 눈앞에서 노트를 보이며 말하는 여자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홱! 노트를 낚아채려 했지만 실패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혜는 그런 소민을 보며 웃었다.
"확실히 민지친구 아니랄까봐 판단은 진짜 빠르네. 지금 민지 보이지?"
'꾸륵! 꾸르륵!'
이젠 소민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민지의 배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민지는 말을 못할 정도로 아파 신음소리만 간간히 내고 있었다.
"내가 좀 손 봤거든. 민지가 지금 똥 못 싼지 3주는 됐나? 그 탓에 잘못하면 이대로 쓰러질지도 몰라."
소민이 지혜를 노려보자 지혜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거기 케이크 5분 줄테니까 전부 다 먹어. 그럼 민지 화장실 보내줄게."
트레이에 있는 조각케익은 8개였다. 소민은 어째서 케이크를 이렇게 많이 산건지 당황하며 말했다.
"이걸 다 먹으라고? 내가?"
지혜는 대답하지 않고 민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자 가뜩이나 복통에 부글부글 끓던 민지의 배가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아..흑!"
소민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지 못하며 민지는 신음을 내뱉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소민은 소리치곤 허겁지겁 케이크를 입에 밀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지혜는 히죽 웃었고 민지는 죄책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게임이 끝나면 진실을 말해줄 생각이였다. 과연 진실을 듣고도 소민은 당당할 수 있을까 지혜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