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의 걱정과 다르게 1교시부터 4교시까지는 무난하게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수업 도중도중 화장실로 틈틈히 달려가야 했고 휴대폰을 들키지 않게 확인하느냐 고생 좀 했지만 운이 좋았는지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개조의 영향으로 유나와 민지는 끊임없이 오줌마렵다, 방귀 나올 것 같다. 메세지를 보내며 소민이 정신 나갈 것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어쨌든 점심시간까지 버텼으니 점심 식사 후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곳에 가면 좀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점심은 급식을 먹기 때문에 소민은 친구들과 급식실로 향했다. 가끔 메뉴에 따라 도시락을 싸오긴 하지만 오늘은 가지무침 같은 나물류도 나오므로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
'꼬르르륵..'
아침에 그렇게 소민을 괴롭히던 공복이 조금 잠잠해졌나 싶더니만 점심 때가 되니까 또 귀신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민은 식판을 들고 서둘러 밥을 담았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 연수가 말했다.
"어? 소민아 너 밥 그렇게 많이 퍼도 괜찮아?"
"응?"
친구의 말에 식판을 확인해보자 밥 칸 가득 밥이 차 있었다. 소민은 깜짝놀라며 밥을 덜어내고 말했다.
"아! 내가 딴 생각 좀 했나봐 왜 이렇게 많이 담았지?"
평소 탄수화물 조절을 위해 밥은 한 주먹 정도만 담는 소민은 거의 머슴밥 수준으로 담아낸 밥을 덜어내고 평소의 식단으로 담았다. 식판에 반찬을 다 담고 자리에 앉자 기다리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소민아 돈가스 안 먹지? 나 먹는다?"
"응 가져가."
급식 중엔 항상 메인 반찬이 나왔고 보통 소민은 그것을 다른 친구에게 양보하는 편이였다. 늘 소민이 주는 것을 받아 먹는 친구에게 돈가스를 넘겼지만 소민은 왠지 탐탁치 않았다.
오늘따라 유독 돈가스가 맛있어보였다. 그래도 참아야만 했다.
'나 진짜 이상해. 이렇게 내가 식욕이 많았나?'
소민은 원래 거식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먹을 것을 멀리했다.
어렸을 때부터 쌓은 트라우마 덕분에 오늘 처럼 이렇게 식욕이 왕성한 일은 몇 년 만이였다.
'역시 김지혜 그 년이 뭘 하긴 했어.. 대체 뭘..'
소민은 생각하며 국을 한번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러자 역겹고 미끌미끌한 무언가가 입 안 가득 느껴졌다.
"우욱..!"
"왜, 왜 그래?!"
소민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연수는 갑자기 소민이 구역질 하려고 하자 소리쳤다.
'또 깜박했어..!'
아침에 이어 점심에도 다른 생각을 하느냐 미각개조에 대해 잊고 있던 소민은 국을 한 모금 마시자 입 안 가득 퍼지는 역한 냄새에 토 할 뻔 했다. 소민이 헛구역질을 하자 깜짝 놀란 친구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민을 바라봤다.
"허억..허억.. 아냐 괜찮아.."
소민은 걱정하는 친구들을 다독이곤 대답했다.
"너희 마저 먹어. 난 오늘 그만 먹어야겠다."
도저히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아 소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친구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민을 바라보았다.
급식실 밖으로 나간 소민은 그렇게 점심을 굶고 양치로 입을 씻었다.
'꼬르르르륵'
배는 계속 배고프다고 울렸지만 견뎌내야만 했다.
'지쳤어..'
검도부 활동은 오늘 하루 쉬겠다고 말한 소민은 정신적으로 피로한 탓에 피곤한 표정으로 하교하고 있었다.
소민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오늘 하루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친구들이 소민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는 했지만 소민이 걸린 개조에 비해 그정도면 충분히 잘 버틴 것이였다.
"바로 집에 가야지.."
집에 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쉬고 싶은 소민은 유나와 민지가 있는 단톡방에 자신의 이후 스케쥴을 이야기하려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고 있는 와중에 뭔가 지려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때였다. 소민의 전화기가 울리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소민이 전화를 받자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한소민. 우리 잠깐 볼까? 너도 하교했지?"
김지혜였다.
지혜가 보자는 말에 소민은 바로 얼굴을 찌푸리고 전화를 끊으려다가 오늘 하루 종일 있었던 공복에 대해서도 그렇고 배설 공유라는 말도 안되는 일에 대해서도 그렇고 대화를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지혜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알았어, 그럼 장소 불러줘. 어디로 갈까?"
오피스텔로 오라는 지혜의 말에 소민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제 그런 일을 겪었던 장소라서 더욱 불안해졌다.
"택시를 잡을까."
학교에서 제법 먼 거리였고 버스로 가는 방법도 몰랐기에 소민은 택시를 타고 오피스텔로 향했다.
"문 열어 김지혜."
오피스텔에 도착한 소민이 문을 두들겼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소민이 문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려보자 잠겨있지 않았는지 문이 열렸다.
"뭐야, 김지혜! 나 왔다고..읏!"
별 생각없이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간 소민은 지혜를 부르다가 풍겨오는 냄새에 황급히 코를 막았다.
서둘러 거실로 향하니 거실 테이블에 피자, 햄버거, 족발, 치킨이 가득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다. 냄새를 맡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미 맡아버린 소민의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구르르르르륵!'
"김지혜.. 이 씨발.."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달은 소민이 바로 뒤돌아 오피스텔을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숨어있던 지혜는 소민의 의식을 잠재우곤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와 소민아. 안녕?"
지혜가 의식을 빼앗아 버린 탓에 당연히 소민이 대답할 리가 없었지만 지혜는 확인 차 인사를 하곤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까 네가 아예 입에 안 대면 중독이 될 일이 없더라고. 게다가 오늘 보니까 진짜 잘 참더라."
하루 종일 노트를 통해 노예들의 행적을 감시한 지혜는 소민이 예상 외로 흡사 광기에 가까운 인내심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소민을 불러냈다.
이렇게 개입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약 중독자도 마약을 일단 맞아야 중독자가 되든 말든 하니까.. 우선 소민아 앉아."
지혜의 지시대로 소민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지혜는 웃으며 말했다.
"뭐가 제일 먹고싶어?"
지혜의 물음에 소민이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치킨이 먹고 싶습니다."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민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구르르르르륵'
지혜에게 까지 들릴 정도로 꼬륵 거리는 배, 앙 다문 입 사이로 슬며시 흐르기 시작하는 침, 그리고 냄새 탓에 움찔 거리는 몸까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지혜는 명령을 내렸다.
"소민아, 딱 한 입 씩만 먹어도 괜찮아. 자, 먹어."
지혜의 명령이 떨어지자 소민은 손을 들어 닭다리를 입으로 가져가 베어물었다.
"...!"
이런 패스트푸드를 입에 안 댄지 오래되었던 소민은 입 안 가득 느껴지는 달고 짠 자극적인 맛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을 반짝이며 소민은 지혜의 말을 무시하고 치킨 다리 하나를 깔끔하게 먹었다. 지혜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음은 족발, 그 다음은 햄버거.
소민은 지혜가 준비해둔 패스트푸드를 한 조각, 한 덩이, 한 개 전부 먹어치웠다.
평소 소식한 탓에 작은 위장이 금새 채워지고 포만감을 느끼게 되었다.
"맛있었어?"
지혜가 묻자 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나 황홀했는지 소민의 시선은 여전히 음식에 꽂혀 있었다. 지혜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맛을 알아버렸으니 어떡해? 버틸 수 있지?"
지혜는 만족스럽게 웃곤 노트를 펼치고 말했다.
"다음엔 중국음식 먹어보자. 아, 오늘 먹은 것에 대한 기억은 전부 지워줄게. 너도 그래야 편하잖아."
오로지 음식에 대한 중독계기만 새기고 지혜는 소민이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소민을 시켜 음식을 전부 치운 뒤 자신의 입가나 입 안에 음식물을 정리하게 한 후 소민의 의식을 되돌렸다.
"...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소민은 오피스텔에 왔다는 기억을 되새기며 지혜를 바라봤다.
"너 또 무슨 짓 했어?"
"응?"
지혜가 모른 척 하자 소민이 소리쳤다.
"내 몸에 무슨 짓 했냐구! 왜 하루종일 배가 계속 고픈건데. 어라?"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을 잊은 소민이지만 음식을 먹긴 했기 때문에 공복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만족스러웠다.
"뭔 일 있어?"
지혜가 묻자 소민은 말을 돌렸다.
"그리고 배설 공유 진짜 말도 안되는 거야. 일상생활 어떻게 하라고? 어차피 안 들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니가 두 사람을 오줌싸개에 뿡뿡이로 만들었잖아. 나까지 왜 피해를 보냐구!"
'귀찮네..'
아직까지 소민은 지혜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지혜가 귀찮을 정도로 따져들기 시작했다.
지혜는 소민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해야 내가 뭘 하든 수긍할까 생각했다.
민지처럼 완전하게 뭘 당해도 지혜에게 따지지 못하게 만들려면 역시 당장 몸에 변화를 주는 게 최고였다.
지혜가 아직 노트가 신기하던 시절 당한게 있다보니 민지는 지혜에게 소민처럼 따지지 못하고 있었다.
"알았어, 기다려봐."
생각을 마친 지혜는 소민에게 벌을 주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돼지로 만드는 정도로만 만족하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하니 괘씸하기도 했다.
노트를 펼치며 지혜는 소민의 항목에 추가했다.
'코가 커지며 진짜 돼지처럼 코가 변한다.'
누가봐도 티가 나는 변화이자 소민 역시 충격먹을 개조였다. 변화는 바로 일어났다.
"아악..!"
소민은 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몸을 숙이고 비명을 질렀다.
코 뼈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소민의 머릿속으로 우득우득 소리가 울리는 듯 했다.
"또 뭐한거야! 아악!"
통증이 괴로운 나머지 목소리를 쥐어짜며 소민이 소리쳤다. 지혜는 히죽히죽 웃으며 손거울을 찾아 소민에게 보여줬다.
"이게 무슨..어?"
소민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자신의 코를 조심스럽게 만져봤다.
사람 피부같지 않은 분홍빛의 코는 만지니까 살짝 축축했다. 손으로 만져보자 진짜 자기 코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컹! 부힉?!"
지혜에게 소리치던 소민은 자기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오자 깜짝놀라 말을 멈췄다.
지혜는 전혀 추가하지 않은 항목의 변화에 깔깔 웃으며 말했다.
"인간의 발성기관은 돼지코랑 안 맞나봐? 왜 그런 소리가 나지? 푸하하핫!"
지혜가 비웃자 소민이 소리쳤다.
"컹, 우, 웃지마! 어서 되돌리란 말야! 부흣.. 이런 몸으로 살라는게 제정신이야? 크헝"
지혜는 너무 웃은 탓에 찔끔 나와버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니가 나한테 대든게 잘못이지. 왜, 이번엔 다른 곳을 바꿔줄까? 아니면 그정도로 만족할래?"
"꾸힉..뭐라고?"
소민은 작게 이를 갈며 생각했다.
지혜의 심기를 건들지 말라는 민지의 말이 떠올랐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어차피 물리적으로는 지혜에게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는 소민이였다. 여기서는 한 발 물러나 비굴하게 빌 수 밖에 없었다.
"꾸흣.. 제발..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이런 식으로 몸이 바뀌면 주변에서도 엄청 이상하게 볼거라구!"
"흐응. 그 말도 일리 있지. 그럼 선택해."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민에게 말했다.
"그 몸을 알아서 숨기며 살래? 아니면 유나쌤한테 해준 것 처럼 예전부터 돼지코로 살아왔다고 주변인식을 바꿀래?"
고민 할 필요가 없었다.
소민은 황급히 대답했다.
"인식을 바꿔줘! 크헝 부탁할게! 꾸힛!"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를 끄적였다. 그러곤 소민을 보며 말했다.
"네가 너무 우습게 생각한 것 같아. 뭐, 당연히 나도 그럴 줄 알고 유도한거지만. 네 선택이니 잘 견뎌내길 바래?"
"뭐라고?"
어리둥절한 소민이였지만 그 순간 전화기가 울렸다.
소민이 화면을 확인해보니 연수였다. 소민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으..응 연수야. 부힛.. 왜 그래?"
자기도 모르게 부끄러운 소리를 내자 제발 인식개조가 잘 되었기를 바라며 소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전화기 넘어로 돌아오는 말은 소민의 상상 이상이였다.
"야 ㅋㅋ 돼지년아. 어디야? 내가 오늘 햄버거 쳐먹인다고 하지 않았어?"
"어?"
한번도 듣지 못한 말이였다.
그보다 연수가 자신에게 돼지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전화통화하고 있는 소민을 보며 히죽거리는 지혜가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는 듯 했다.
"씨발 ㅋㅋ 좋은 말 할 때 OO버거집으로 와라? 30분안에 안 오면 내일 학교에서 죽여버릴거니까"
연수는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당황한 소민이 지혜를 바라보자 지혜가 말했다.
"인식개조를 너무 편하게 생각한거 아냐? 옛날부터 돼지코였다고 인식하면 당연히 네 상황도 변하지. 어디보자.. 너는 지금 돼지코라서 왕따 당하는데 검도부에서 승승장구하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얼굴에 걸맞는 몸을 만들어주겠다고 억지로 음식먹이기 당하고 있다는 설정이네."
"거짓말.."
지혜의 말에 소민은 중얼거렸다.
돼지코가 된 것으로도 모자라 하루 아침에 모든 친구들을 잃어버리게 된 상황이였다.
"부힉 부힉 제발..! 지혜야. 내가 미안 킁킁 해. 제발..!"
소민은 무릎꿇고 유일하게 상황을 뒤집어줄 지혜의 다리에 매달리며 애원했다.
지혜는 이대로 소민이는 방치해도 되지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몰아세웠다가 망가져버리면 곤란하니 숨통을 틔워주기로 했다.
"그래그래, 이제 파악이 됐어?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너를 어떻게 떨어뜨릴 수 있는지?"
"꿀, 응..! 그러니까 제발.."
지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 너 하는거 봐서 되돌려줄게. 라고 말할지
여기서 몸을 되돌려주고 소민을 혼쭐낸 걸로 만족할지.
"그럼.."
지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